식사 때 반주 즐기는 91세 父 "'너도 술 좋아하냐'고 물어봐야지"
(속초·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지성림 기자 = "내 아들이라면 여러 말 안 해도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광복절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북한에 남겨진 아들과 손녀를 만나는 이기순(91) 씨는 "아들한테 어디서 살았는지만 물어보면 진짜 아들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아들이면 할아버지·할머니(이씨의 부모)가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 다 알 거다"라고 말하는 이씨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씨는 "아들이 두 살 갓난아이였던 모습만 보고 월남했다"며 "가족은 북한에 남고 형님과 둘이서 옹진에서 월남했는데, 형님은 넘어오던 중 섬에서 병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헤어질 때 갓난아이였던 아들 리강선 씨가 75세의 백발이 되어 아버지 앞에 나타날 만큼 이별의 시간은 길었다.
아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 거냐고 묻자 이씨는 "'너도 술 좋아하냐'라고 물어봐야지"라며 웃었다. 이씨는 술을 좋아해 요즘에도 하루에 소주 한 병반씩 반주로 마신다고 했다.
이씨는 아들과 손녀에게 줄 선물로 햄을 비롯한 식품과 의류, 화장품 등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한편 김춘식(80) 씨는 남쪽에서 태어난 남동생 김춘영(64) 씨와 함께 북쪽에 남겨졌던 여동생 김춘실(77)·김춘녀(71) 씨를 만난다며 "(가족이 피난 나올 때) 여동생 두 명은 조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남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고향은 당시 황해도 옹진으로, 6·25 전쟁 당시 인공기와 태극기가 한 달에 두 번씩 번갈아 나부낄 정도였다고 한다.
김씨는 "인민군이 올 때마다 피난을 몇 차례 나왔는데 마지막으로 피난을 올 때도 '이번에도 인민군이 한 달이면 나가겠지'란 생각으로 나왔다"며 "조그만 애들은 잡아가지 않으니까 (여동생들을 남겨두고 왔다)"고 사연을 전했다.
전쟁 후에 인천에서 태어난 김춘영 씨는 "(이번에) 누나들을 처음 본다. 부모님이 피난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누나들과 고향 얘기를 안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못 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피난 직후부터 심장병을 앓다가 1980년대에 65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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