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안 만나면 좋은데…표정 관리 어려워"
(자카르타=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한국 남자 배드민턴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노메달 수모를 안긴 일본의 사령탑은 공교롭게도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 박주봉(54) 감독이다.
일본 남자 배드민턴은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8강에서 한국을 3-0으로 제압하며 4강에 진출했다.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경기는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4강에 올라가면 무조건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한일전 승리 후 박주봉 감독은 "어휴, 안 만나면 좋은 데 만나서…"라고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한국을 이겨 미안하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기분이 묘하다. 한국과는 안 붙었으면 좋겠다. 제일 부담스럽다. 만나면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며 "오늘도 한국 응원단이 많이 오셨는데, 오늘은 가서 인사하기도 좀 그랬다"며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또 "한국과 너무 일찍 붙었다. 우리도 착잡하다"며 준결승, 결승도 아니고 8강에서 한일전이 성사된 아쉬움을 표했다.
일본은 흥분에 젖어 있다.
일본 남자 배드민턴은 1970년 방콕 대회 이후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단체전 4강에 올랐다. 여자 배드민턴도 단체전에서 4강에 진출, 남녀 동반 메달을 확보했다.
일본은 1998년 방콕 대회 여자단식 금메달을 끝으로 끊긴 금맥을 터트리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박 감독은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는 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직후 일본 배드민턴 감독을 맡았다.
이후 14년간 박 감독은 일본 배드민턴 체질을 싹 바꿨다.
실업팀 위주의 일본 배드민턴계를 국가대표팀 위주로 바꾼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훈련시설과 합숙 시스템, 대표팀 전담 코치제도 등을 도입했다. 현재 박 감독은 1·2군 포함 9명의 국가대표 코치를 거느리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진천선수촌과 같은 국가대표 선수촌을 2008년 마련하면서 배드민턴 훈련 여건도 좋아졌다.
일본 배드민턴은 점점 성장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복식 금메달로 일본 배드민턴 역대 첫 올림픽 금메달을 거두면서 황금시대를 열었다.
현재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랭킹 10위 안에 드는 일본 선수는 남자단식, 여자단식, 남자복식, 여자복식에서 총 10명에 이른다.
박 감독은 "성적이 나오니 협회에 후원이 많이 붙었다. 예산을 비롯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며 일본 배드민턴을 세계 최정상급 수준으로 끌어 올린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빈틈 없는 시스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매년 10월이면 내년 일정이 다 나오고, 11월에는 확정이 된다. 1·2군 선수들이 각각 어느 대회에 나가는지 미리 알고 준비한다. 협회가 선수들의 각 소속팀과 잘 조율해서 계획을 거의 100% 지키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은 나도 일본에서 배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세대교체 통증을 앓고 있는 한국에 "개인전에서 잘했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덕담을 건넸다.
그는 "한국이 큰 대회 단체전에서 일본에 상당히 강했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약해진 면이 있다"며 "은퇴한 베테랑 선수들이 조금 희생하면서 어린 선수들을 끌어주고 나갔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지도자 입장에서 한국 대표팀 사정을 헤아리기도 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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