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공연 시작 20분 전 관객이 입장한다. 무대 한가운데 뻥 뚫렸고 회전의자가 놓였다. 낯선 무대, 당황스러운 객석에 관객들이 두리번거린다. '저기 앉으라고?'
곧이어 어둠이 깔리고 막이 오른다. 관객을 포위한 4면 무대 모서리가 밝아지고 등장인물 4명이 무대에 오른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딜 봐야하지?' 관객들의 고개가 분주히 움직인다.
극단 라마플레이의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는 '4면 무대'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채용했다. 전면만 보이는 '프로시니엄' 형태 무대에 익숙한 관객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4면 무대'는 관객이 무대를 사방으로 포위하는 형태인 '아레나 무대'와는 정반대로 무대가 관객을 포위하는 식으로 배치된다.
배우가 아닌 관객을 극장 중심에 놓는 배치 덕에 관객은 회전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방향을 선택하며 자신이 원하는 배우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는다.
낯선 무대에 당황한 관객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지런히 고개를 움직이며 배우들 연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대사를 하지 않고 있는 배우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각자 성향에 따라 자신만의 연극을 즐기는 셈이다. 임지민 연출이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임 연출은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자기중심의 360도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관객들은 프로시니엄 형태의 무대에 익숙해 있는데 무대를 360도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부터 이런 철학을 연극에 접목하고 싶었는데 이 희곡이 정말 잘 맞아떨어져서 처음 접한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준비된 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염탐하게 만든 의도를 관객들이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젊은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작품으로 지난 2년간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 개발지원을 거쳐 완성됐다.
자기 삶을 지키려는 소녀 '덕'은 다발성 경화증(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만성 신경질환)을 앓는 아버지 '휴'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커콜디라는 작은 마을에 산다.
사회복지사 '린다'가 덕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 다가오는데 휴의 증상이 갑자기 악화한다. 덕은 보호시설에 넘겨질 것을 걱정하며 휴의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일을 꾸민다.
작품 제목인 '집에 사는 몬스터'는 덕의 엄마가 가장 좋아한 오토바이이자 사고로 그녀를 숨지게 한 '두카티 몬스터' 오토바이를 뜻하는 동시에 '살면서 마주하기 두려운 어떤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임 연출은 "집에서 인스턴트 식품만 먹는 아빠 휴를 표현하기도 하고 집 거실에 놓인 두카티 몬스터 오토바이를 통해 엄마의 죽음이 박제된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우란문화재단 창작개발지원을 통해 2년간 플랫폼 공연, 트라이아웃 공연 등의 준비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참여한 배우 김은석, 남미정, 이지혜, 이종민이 본 공연 무대에 오른다.
9월 2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티켓 가격은 1만5천∼3만5천 원이다. ☎ 1544-1555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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