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문학사

입력 2018-08-21 10:32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문학사
강좌 원고 묶어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한국 현대문학사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다시 짚어보는 내용을 담은 책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출판사 민음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지난해 2월 열흘 동안 열린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이 강좌의 목표는 젊은 독자들이 새롭게 장착한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중심으로 한국 문학사를 다시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등을 계기로 촉발된 '성정치' 의식을 한국 문학사에도 적용해 보고자 했다.
당시 강좌에는 매회 100여 명 청중이 모여 한국문학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열띤 논의를 벌였고, 강좌가 끝난 뒤에도 책 출간 요청이 뜨거웠다고 한다. 이에 강연자로 참여한 열 명을 비롯해 세 명의 연구자가 새롭게 참여해 책이 완성됐다.
문학 연구자 권보드래, 심진경, 장영은, 류진희, 이혜령, 허윤, 강지윤, 정미지, 김미정, 조서연, 이진경, 김은하, 오혜진이 필자로 참여했다.
이 단행본 기획을 맡은 오혜진은 서문에서 "이 글들의 정치적·미학적 견해는 단일한 입장으로 수렴되기 어려우며, 때로는 충돌하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 공통적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 있다. 더 이상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시대별로 조망한 글들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은 이진경의 '섹슈얼리티의 프롤레타리아화- 1970년대 문학과 대중문화의 성노동 재현'에서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판한 부분이다.
필자는 난쟁이의 딸 영희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재벌 손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내용을 꼬집어 "가족과 계급, 민족을 위해 수행된 노동으로서의 성적 타락으로 의미화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영희의 '효심'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종의 '매춘'인 그녀의 행동을 미화시켜 '신성한 것'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목되는 것은 한국에서 진보 문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로 평가되는 작품에 대한 한국문학계의 천편일률적인 찬양과 여성주인공 영희에게 부여된 전통적인 역할(성적으로 자기희생하는 여성)의 뚜렷한 대조"라며 "조세희의 좌파 민족주의 소설은 가문, 국가, 남성의 대의를 위해 마음을 바쳐 기꺼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희생하는 과거의 원형적인 여성주인공들을 재창조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428쪽. 1만6천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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