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 같지 않다"…엽총사건에 일선 공무원 불안 확산

입력 2018-08-21 17:22  

"남 일 같지 않다"…엽총사건에 일선 공무원 불안 확산
수원시청 내부게시판 "안전한 근무환경 보안대책 마련" 요구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1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공무원 2명이 민원인이 쏜 엽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비슷한 처지에 놓인 행정공무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행정공무원들에 대한 민원인의 테러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봉화 엽총 사건 소식이 알려진 이 날 오후 경기 수원시청 내부행정망에는 "민원인과 직접 대면하는 동주민센터와 구청민원실, 차량등록사업소, 시청민원실에는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한 보안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익명의 글이 올라왔다.
이 작성자는 "엽총 난사로 팀장급 한 분과 주무관 한 분이 안타깝게 숨을 거두셨다"면서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르면 즉시 경찰이 출동하는 비상벨을 민원실에 설치하는 등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사 공무원을 아내로 둔 수원시청의 한 공무원은 "아내가 지금은 출산휴가 중이지만, 사회복지 업무를 볼 때면 늘 민원인의 폭력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했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안전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에는 해마다 1천200건이 넘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업무수행 중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원시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수원시청 소속 사회 복지담당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건수가 2013년 1천216건, 2014년 1천244건, 2015년 1천863건, 2016년 1천742건, 지난해 1∼8월 1천528건으로 집계됐다.
주로 사회복지, 여성 정책,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보육 아동 업무 등을 담당하는 동주민센터와 시청 민원부서 공무원이 피해자다.
지난해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주민센터에서는 시각장애 노인이 서류작성을 요구하는 공무원에게 "옛날에 다 이렇게 발급해줬는데, 무슨 소리냐"며 "개 같은 X, 썅 X' 등 욕설을 하고 공무원의 가슴팍을 수첩을 내리치는 등 폭행을 했다.
3개월 동안 지속한 이 민원인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공무원이 결국 경찰에 폭행 및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하자 민원인은 사과와 함께 합의를 요청했다.
공무원은 민원인이 고령인 데다 몸이 아픈 점을 고려해 합의해 줬으나, 정신적 피해와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지속했다.


올 3월 9일 사회복지 공무원(34·여)이 복지급여 지급에 불만을 품은 50대 지적장애인으로부터 흉기피습을 당한 용인시청의 공무원은 봉화 엽총 사건의 충격파가 더 컸다.
흉기피습 공무원이 일하던 모 주민센터의 한 여성 공무원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개방된 공간이라 위험요소가 많다"고 불안해했다.
흉기피습 사건이 후 이 주민센터에는 청사보안 요원이 배치됐다. 그러나 피해 여성 공무원은 복직하지 못한 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용인시청 내부게시판에는 "불안해서 일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용인시청의 한 공무원은 "공무원 2명이 민원인의 엽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에 다들 불안해하고 동요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언제까지 민원담당 공무원들이 가슴 졸이며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들의 불안과 달리 대부분의 시·군에서는 민원담당 공무원들의 안전대책 마련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민원창구 가림막 설치와 청사 스크린도어 설치 등 보안시설 설치에 난색을 보인다. 민원인인 시민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그런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용인시는 공무원 흉기피습 이후 31개 읍·면·동 주민센터에 보안요원을 배치하고, 청사보안시설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공무원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으나,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동주민센터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만나는 창구에 가림막 설치를 요청했으나, 수원시와 비슷한 이유로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신, 사건 발생 시 경찰에 연락할 수 있는 비상벨을 설치하고, 호신 스프레이를 동주민센터에 비치했다.
또 민원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호신교육과 힐링 교육을 실시했다.
용인시는 청사보안 요원 배치와 민원실·복지상담실 안전문 설치를 위한 예산을 확보해놓았다.
이날 오전 9시 31분께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 귀농인 김모(77)씨가 들어가 직원들에게 총을 발사해 민원행정 6급인 손 모(47) 씨와 8급 이 모(38) 씨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hedgeho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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