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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삶이 펼쳐진 꽃밭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직 꽃밭을 뒹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삶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족속들인가? 얼마나 큰 운을 안고 태어났기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일까?"
이 시대 많은 사람이 품는 이 질문에 약간의 답을 보여주는 소설이 나왔다. 김사과(34)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 'N.E.W'(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마치 막장드라마처럼 인물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흥미진진한 서사에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을 담았다. 이 책 표지는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홀로그램이 입혀졌는데, 소설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실체. 돈과 욕망으로 쌓아올린 '톱'의 세계가 얼마나 허상이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괴한 모습인지 그려낸다.
이야기는 '정지용'이란 인물의 탄생에서 출발한다. 정지용은 재벌 오손그룹의 후계자로,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했고 그룹 회장인 아버지 '정대철'은 무성한 소문으로 둘러싸인 인물이다. 성인이 된 정지용은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눌려 덜떨어진 자식'이라는 세간의 평을 받는다.
그런 정지용과 결혼하게 된 최영주는 엘리트 교수 집안에 학벌과 미모를 겸비한 '완벽한' 여자로 뭇 여성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는다. 이들의 신혼집은 오손그룹이 서울 근교 L시에 세운 첨단 아파트 '메종드레브'. 999대의 CCTV와 스마트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곳이다. '다양한 계층을 섞어 완벽한 통제 속에 고도의 균형을 달성한 인간을 키워내겠다'는 정 회장의 계획하에 200평짜리 펜트하우스부터 5평 원룸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 5평 원룸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이하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인터넷 BJ로 돈을 좀 벌기 시작한 젊은 여성. 막연히 신분 상승의 욕망을 키우던 중 우연히 건물 로비에서 정지용과 마주친다.
정지용은 왕비처럼 아름답고 강한 최영주도 좋지만, 촌스럽고 예쁜 이하나에게 끌린다. 이하나를 유혹해 집을 사주고 '두 집 살림'을 시작한다. 임신한 최영주는 이 사실에 절망한다. 한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두에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믿었으나, 알고 보니 노련한 조련사에 의해 철저히 사육된 것임을,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공허함을 메우려 인스타그램에 화려한 사진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던 최영주는 생각한다.
"무슨 사진을 올리든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부럽다, 예쁘다, 좋아 보여 등…. 아하, 그것이 나의 객관적 상태인가? 내 삶은 예쁘고 좋아 보이는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의 사진에 그런 코멘트를 다는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와 비슷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또 비슷한 반응을 팔로워들에게서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처럼 지금 뭐가 뭔지, 내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인 것일까? 그들도 사실은 답답함과 허무함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43쪽)
이하나는 한동안 "꽃밭을 뒹구는 삶"에 취하지만, 정지용이 찾아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워진다.
"이하나는 정지용이 부러웠다. 특히 부러운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 결여된 듯한 삶의 태도였다. 왜냐하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조아리는데 무슨 상식이 필요해? 그는 상식 밖의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세상은 짜릿하다. 이하나는 자신이 정지용의 세계에 중독된 것을 인정했다. (…)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전화에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껴지는 절망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혹시 그를 마주칠까 그와 함께 갔던 장소들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은 전혀 사랑이 아니다." (172쪽)
그렇다면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인 정지용은 어떨까. 늘 평온한 모습이지만 의뭉스러운 정지용의 실체가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스스로 쌓아올린 허상이나 유령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288쪽. 1만3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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