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잠식 우려" vs "사자가 풀까지 뜯어 먹으려 하나"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올해 5월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통과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대상 품목에 김치가 포함된 것을 두고 식품업계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연구 역량이 떨어지고 도리어 중국산에 잠식될 우려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지만, 소상공인들은 당연히 이뤄져야 할 보호라고 맞서는 모양새다.
2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특별법은 상공인의 생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73개 업종·품목을 대상으로 대기업이 5년간 이들 사업을 인수, 개시, 확장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관련 매출액의 5% 이내에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73개 대상 품목 가운데 약 40%가 식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식품업계 일각에서는 대상 품목 가운데에서 'K 푸드'의 대표 주자인 김치의 특수성에 주목하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김치 시장점유율 2위 브랜드 '비비고'를 가진 CJ제일제당은 특히 김치 산업의 육성과 세계화를 꾀하려면 자본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뛰어들어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 필수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치 산업은 배추·고추 등 이물질이 많은 원재료를 사용해 살균이 불가능한 상품으로 위생·안전 문제가 특히나 중요한데,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위생적인 생산관리 시스템이나 냉장 유통망 등 인프라 기반의 생산 유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 김치 생산업체 가운데 10인 미만 사업장이 70%를 넘는 영세한 산업 구조를 가지고서는 품질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김치 시장은 대기업 위주의 고급 가정용 김치 시장과 중소기업 또는 수입품 위주의 업소용 시장으로 나뉘어 있다"며 "소상공인은 가정용 김치 시장에 새로 진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대기업 참여를 제안하더라도 소상공인 보호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중국산 저가 김치를 규제할 수 없어 국내 기업 역차별이 우려된다"며 "국내 공급물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중국으로부터 김치 수입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 김치 종주국의 김치 산업의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중국 김치 수입량은 2014년 21만2천여t에서 2015년 22만4천여t, 2016년 25만3천여t, 지난해 27만5천여t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양은 국내 김치 유통량의 약 30%로, 특히 업소용 김치 시장에서는 중국산이 8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특별법 후속 조치로 준비 중인 시행령에서 몇 년간 유예 기간을 두거나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 김치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두는 식으로 모종의 특례 조항을 내심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종가집' 브랜드로 김치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대상은 "정부의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관련 법률을 준수할 방침"이라며 "어차피 현재로서는 김치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 확장이나 M&A 계획 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업계 1위를 따라가기 바쁜 CJ제일제당은 사업 확장 금지에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수십 년 째 1위를 지키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한편,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은 해외 다국적 기업과 싸워야지 사자가 풀까지 뜯어 먹게 두면 안 된다'는 논리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김치는 개인 가정에서 시작된 품목으로, 많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김치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 진출해 해외 다국적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또 "사자가 풀까지 뜯는다면 초식동물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느냐. 사회 양극화가 심각한데, 돈이 있다가 모든 것을 다해버리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며 "작은 기업도 같이 생존하면서 동반성장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이어 "대기업은 한 품목에 집중해 이를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규제는 일부 소비자 후생과 부딪칠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 생태계가 다 죽고 나면 물건을 사 줄 소비자도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ts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