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와 다툼서 독일인 숨지자 작센주 소도시서 극우 대규모 시위
독일 언론 "극우, 전국적인 네트워크 갖춰…극우 세력 과소평가 안돼"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사회가 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극우 세력의 대규모 폭력시위로 요동치고 있다.
극우 세력의 단결력과 폭력성에 상당히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극우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극우 세력의 성장세는 사회 문제시됐지만, 이번처럼 조직력과 폭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번 집회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새벽 작센 주의 켐니츠에서 거리 축제 참가자 간 다툼이 벌어져 35세 남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면서 비롯됐다.
용의자로 시리아 출신의 23세 남성과 이라크 출신의 22세 남성이 체포된 것이다. 경찰이 용의자의 출신 국가를 밝히기 전에 극우단체는 이민자로 규정짓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을 퍼트렸다.
더구나 숨진 남성이 페이스 등에서 반(反)나치 성향을 보였지만, 극우 세력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시민들을 선동했다.
이런 탓에 26일 집회에는 800여 명이 참여했지만, 하루가 지난 뒤 열린 집회에는 6천여명이 몰려들어 대표적인 극우 구호인 '우리가 국민이다'를 외쳤다.
더구나 극우 세력에 반대하며 맞불집회를 연 시민 1천여 명에게 폭죽용 화약과 병, 돌을 던지며 폭력성을 보였다.
극우 세력은 지난 5월 베를린에서 AfD 주도로 5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열었지만, 평화적으로 진행한 데다 2만5천여 명이 참여한 맞불 집회에 압도당한 바 있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28일 오피니언에서 "거리에서 우익 그룹들의 행동은 잘 조직화했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그들은 작은 그룹이었지만 잘 훈련돼 집회에 인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내무부는 이번 집회에 작센 주 외에서 훌리건 등 극우 세력이 몰려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독일 정치권은 극우 세력을 성토하고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폭력시위에 대해 "법치국가와 맞지 않은 행위"라며 "독일에 폭동을 위한 공간은 없다"고 비판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모든 형태의 폭력시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우리는 거리에 증오를 퍼트리고 다른 출신을 괴롭히려는 불법 집회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연정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의 라르스 클링바일 사무총장은 "개인적인 사법적 처벌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논평을 거부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제호퍼 장관은 난민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기독사회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 소속인 미하엘 크레취머 작센 주 총리는 이번 시위에 대해 "역겨운 행위"라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사태가 커지자 AfD도 표면적으로 이번 시위와 거리를 두고 있다. 작센 주에서 당선된 AfD 의원들은 불행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AfD의 마르쿠스 프로흔마이어 의원은 트위터에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칼 이주'를 막는 것은 시민의 의무"라고 폭력시위에 가담한 시민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주요 언론은 이번 사태를 통해 극우 세력의 확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기사에서 "이번 사태에서 보안 당국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작센 주 같은 곳이 많은 극우주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도이체벨레도 오피니언에서 "극우의 폭력성과 극우단체의 위협은 과소평가됐다"면서 "독일 정치인들이 이번에 경고를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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