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 물벼락 맞은 철원평야…추석 대목 앞두고 복구 안간힘
(철원=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늦게나마 비가 멎어줘서 다행입니다. 비가 반나절만 더 내렸으면 한 해 농사 다 망칠 뻔했네요."
이틀 동안 437㎜의 물벼락이 쏟아진 강원 철원군은 30일 오전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아침 햇살이 내렸다.
비가 멎은 하늘 아래로 펼쳐진 논은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농민들은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사이사이로 박힌 부유물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철원읍 화지리에서 2만여㎡ 규모로 쌀농사를 하는 유종현(48)씨는 갈퀴를 든 손을 잠시 멈추고 어제 폭우 당시 상황을 얘기했다.
"세상에 그런 폭우는 처음이었죠. 논으로 달려갔는데 순식간에 빗물이 허리춤까지 차올랐습니다. 주위 논에 심은 벼들이 보이지 않아 마치 강처럼 변했습니다."
29일 새벽 철원에 내린 기습호우는 말 그대로 물벼락이었다.
오전 5시 51분을 기점으로 철원 동송에 시간당 113.5㎜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역대 도내 시간당 최고 강수량을 기록한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 상륙 당시 강릉 105.5㎜를 뛰어넘은 수치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철원읍 학지리와 동송읍 오덕리 등 하천, 저수지 인근 마을의 논은 빠르게 물바다로 변했다.
하천과 저수지 수위가 높아지자 빗물이 빠질 곳을 찾지 못하고 논에 그대로 머무른 까닭이다.
다행히 오후 들어 빗줄기가 약해지자 논에 범람한 물이 점차 빠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비가 늦게 그쳤으면 농사를 망칠 판이었다"면서도 "바람이 세게 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폭우에 강풍까지 불었다면 이를 이기지 못한 벼들이 줄줄이 쓰러졌을 터였다.
오덕리 농민 최용길(72)씨는 "여기 농민들은 이번 주말부터 많이들 추수를 나설 참이었는데 벼가 쓰러졌다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철원지역은 이제 본격적인 추수철에 들어간다.
9월 초까지 추수를 마치고, 1주가량 건조 작업을 거친 뒤 추석을 겨냥한 햅쌀을 내놓을 계획이다.
폭우에 농사를 망쳤다면 추석 대목을 몽땅 날릴 판이었다.
몇몇 농민들은 20여 년 전 이곳을 휩쓸고 간 수해를 떠올리기도 했다.
쓰러진 벼를 일으키던 김모(59)씨는 "어제 오전에 오덕교 상판까지 물이 차올라 1996년 당시처럼 물난리가 나는 줄 알았다"며 "그때는 철원지역 농사를 싹 망쳤을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는 과거 수해 때보다 적지만 농민들은 수확 철을 앞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침수된 벼에서 싹이 돋거나, 수확량이 줄어드는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까지 오덕리, 상노리, 화지리, 오지리 등 침수 피해를 본 철원지역 농경지는 100㏊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철원군은 이날부터 정확한 피해조사와 복구에 들어갔으며, 피해 면적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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