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질병예측 가능…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경찰에 수사 대상자의 요양급여내역을 제공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30일 김명환 전 철도노조위원장과 박태만 전 수석부위원장이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제공한 행위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김 전 위원장 등은 2013년 12월 철도 파업을 주도했다가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뒤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건강보험공단에 두 사람이 언제 어떤 이유로 어느 병원에 갔는지 등을 포함한 요양급여 내역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공단은 병명을 제외한 2∼3년치 급여 일자와 요양기관명의 정보를 확인해 경찰에 제공했다.
김 전 위원장 등은 경찰의 이 같은 사실조회와 공단의 정보제공으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경찰이 개인정보를 수집한 근거로 삼은 형사소송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인정보 보호법 관련 조항들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공단이 용산경찰서에 김 전 위원장 등의 요양급여 내역을 제공한 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경찰은 이미 통신사로부터 위치추적자료를 받아 김 전 위원장의 위치를 확인한 상태였다"면서 "급여 일자나 요양기관명은 피의자의 현재 위치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에 제공된 요양기관명 가운데에는 전문병원도 포함돼 있어 청구인들의 질병 종류를 예측할 수 있고, 더구나 2∼3년의 정보는 청구인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를 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헌재는 "공단의 정보제공 행위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청구인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창종, 조용호 재판관은 "청구인들은 그들의 동의 없이 요양기관 방문 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불이익을 받았으나, 체포 영장이 발부된 청구인들을 검거해 국가형벌권을 적정하게 수행하는 공익이 더 중요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재판관들은 경찰의 정보제공 요청 행위, 근거 법 조항 등의 위헌성을 확인해달라는 김 전 위원장 등의 청구에 대해서는 전원 일치 의견으로 모두 각하했다.
사실조회 행위나 근거 조항 자체만으로는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집행 행위가 있어야 기본권이 제한된다는 판단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날 결정에 대해 "병명을 포함하지 않는 국한된 정보라 해도 요양기관명만으로도 질병 종류를 예측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춰 요양급여 내용은 개인정보 보호법이 규정한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감 정보의 범위와 수사기관 제공 요건을 놓고 이번 결정의 해석이 적용되면,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요양급여 정보가 더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수사기관에 제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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