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적 선언 아닌 실제 행동해야" 촉구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이란 핵심 고위층에서 유럽 측이 제안한 '핵합의 유지안'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유럽 측 핵합의 서명국(영·프·독)을 중심으로 미국의 탈퇴에 맞서 이를 유지하기 위한 이른바 '패키지'가 제시됐으나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시한 셈이다.
여기에 서방에 대한 이란의 뿌리깊은 역사적 불신이 얽히면서 핵합의의 앞날이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이란 권력의 정점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내각을 만나 유럽의 핵합의 유지안과 관련, "그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지 말아야 한다"며 경계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의심스럽게 보이는 약속은 조심해야 한다"며 "유럽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란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핵합의가 이란의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이란 역시 이를 탈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도 1일 "유럽 측이 우리에게 핵합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런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길지 의문이다"라며 "유럽과 협상하고 있으나 이제 시한을 두는 게 현명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일 "유럽은 핵합의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선언과 더불어 이란의 국익을 보장하기 위해 실제로 뭔가를 해야 한다"며 "그들은 수많은 방법을 제안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제안을 실행하는 일"이라고 촉구했다.
유럽이 고안한 핵합의 유지안의 핵심은 이란산 원유를 지금처럼 계속 수입하고 미국 정부를 회피해 이란과의 무역 대금을 주고받는 방법이다.
그러나 유럽 정부의 정치적 다짐과 달리 유럽 사기업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우려해 속속 이란에서 철수하는 상황이다.
이란은 유럽을 믿고 핵합의를 유지하기보다 이들이 언제라도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보고 '자력갱생'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이란의 이런 회의적 기류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중재했던 프랑스가 '이란의 양보'를 거론하면서 본격화했다.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달 22일 "이란은 탄도미사일, 중동 내 개입, 핵합의 일몰조건 등 우리가 우려하는 세 가지 사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세 가지 모두 미국이 핵합의 유지를 위해 재협상하자면서 선결 조건으로 요구한 사안이다.
이란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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