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조성진 듀오 투어 첫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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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1일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대미를 장식한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의 화려한 피날레가 마무리되자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70)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젊은 거장' 조성진(24)을 끌어안았다. 무대 위에서 자신과 대등한 연주를 펼친 젊은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는 정경화의 눈에 대견함과 흐뭇함이 흘러넘쳤다. 평소 무대에서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조성진이지만, 이날만큼은 정경화의 포옹에 수줍은 듯 환한 웃음을 보였다.
유럽 무대에서 동양인 연주자를 찾아보기 어렵던 1970~1980년대 최고 스타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받은 정경화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대형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조성진의 만남. 한국 클래식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한국 클래식사(史)의 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정경화는 조성진의 성장을 지근거리에서 살핀 멘토 중 한 명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특별했다. 피아니스트 선정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정경화는 2012년 볼살 통통하던 고등학생 조성진을 자신의 독주회 무대에 세운 바 있다. 조성진은 프랑스 유학 시절과 쇼팽 콩쿠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경화에게 꾸준히 조언을 구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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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날 연주회에서도 서로의 음악을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연주회 초반 정경화는 자신의 뜨겁고 날카로운 활에 조성진이 베일까 자제하는 듯 보였고, 조성진 역시 거장 앞에서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첫 곡으로 선택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의 1·4악장에서는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과 격렬한 비감보다는 딱딱 맞아떨어지는 둥근 앙상블이 더 두드러졌다.
그러나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된 2부 프로그램에서는 두 사람 모두 예열이 끝난 듯 서로의 빛나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올해로 일흔을 맞은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때때로 메마른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품과 마력 넘치는 광채를 내뿜었다. 그는 이제 젊은 시절 그토록 매달린 완벽에 대한 강박을 넘어 그 이상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도인처럼 보였다.
그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테크닉적으로, 물리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그러나 하나 믿는 것은 음악의 핵심적 미학 포인트를 전달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성진의 피아노는 대가 앞에서도 특유의 영롱한 소리로 무대를 반짝이게 했다. 대등한 연주자로서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당당히 전개해 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무대의 하이라이트로는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꼽을 만하다.
정경화는 과거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케빈 케너와 녹음한 이 곡을 조성진과의 조합으로 새롭게 펼쳐냈는데, 특히 2악장은 정경화의 연륜과 조성진의 젊음이 교차하는 에너지로 끓어올랐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이 능수능란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물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음색을 보여줬다면 정경화는 열정 저편의 적적함, 어떤 고지를 넘어선 듯한 체념과 달관 같은 정서를 느끼게 했다"며 "최근 이어진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프랑크 소나타 연주가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었는데, 그 해답이 오늘 무대에 있었다"고 평했다.
서로 끌어안고 서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이들은 마지막 앙코르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려줬다. 정경화가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돼 국내에서 크게 사랑받은 이 곡을 두 사람 모두 꾸밈없고 따뜻한 연주로 들려줬다.
이날 고양에서 시작된 투어는 2일 구리, 진주, 여수 등지를 거쳐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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