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빌린 박씨 옛 사진이 들려주는 혼혈인의 삶

입력 2018-09-03 09:00  

뿌리를 빌린 박씨 옛 사진이 들려주는 혼혈인의 삶
혼혈인 박근식씨 생전 담은 이재갑 사진전, 11일 류가헌서 개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70년 부산발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한 청년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수면제 수십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박근식, 아니 피터의 양복 안에는 혼혈인으로 사는 괴로움을 토로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가 들어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청년은 평생 혼혈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활동했다. 한국혼혈인협회장을 지낸 혼혈인 1세대 박근식 씨가 세상을 떠난 지 내년이면 10년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피의 순도를 중시한다.
11일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이재갑 사진전 '빌린 박씨'는 사진작가 이재갑이 촬영한 박씨의 옛 사진들을 내어 보인다.
작가는 박씨와 주고받은 대화 한 토막을 공개했다. "그는 어느 날 내게 '어디 이씨'냐고 물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경주 이가'이고 익제공파 38대손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은 '빌린 박씨'라고 했다. (중략) 어머니의 성(밀양 박씨)을 따라 박씨 성을 따랐지만, 자신은 밀양 박씨가 아니고 '빌린 박씨'라고 했다."



이재갑은 1990년대부터 이렇게 '뿌리를 빌린' 박근식 씨를 중심으로 혼혈인들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혼혈인은 광복-한국전쟁-한반도 미군 주둔 상황 속에서 외모와 피부색이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을 뜻한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이들을 껄끄러워했다. 개별 진실도 알려 하지 않은 채, 어머니와 자식 모두를 배척했다.
작가는 박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끝에 "형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얘기한 '빌린 박씨' 이야기를 제목으로 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1993년 청주로 귀촌해 소를 키우면서 혼혈인 자립을 돕는 '공동체 농장' 꿈을 키우던 모습, 2006년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혼혈인 인권 등을 말하는 모습 등 박씨와 주변 혼혈인들의 소소한 삶이 흑백사진을 통해 전해진다.
갤러리는 3일 "박근식씨 삶을 통해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빌린 박씨'들을 소환하는 자리"라면서 "'오도된 채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이들을 마주함으로써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성찰을, 사진의 힘을 빌려 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0일까지. 문의 ☎ 02-720-2010.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