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국영화계에서 괴수영화 장르는 사실상 불모지에 가깝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이 한국 괴수물의 새 장을 연 이후 '디워'(2007), '차우'(2009), '7광구'(2011) 등이 명맥을 이었지만,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킹콩, 고질라 같은 해외 괴수물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수준 높은 기술력과 많은 제작비가 필요한 탓이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물괴'(허종호 감독)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모처럼 나온 괴수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극판 괴수 영화라는 혼합 장르에 액션과 유머, 볼거리 등을 고루 갖춰 상업영화로서 본분은 하는 편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가장 먼저 출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뒷받침된 듯 보인다.
배경은 중종 22년. 산 곳곳에서 사지가 절단되고, 역병에 걸린 사체가 잇따라 발견된다. 도성에는 기이한 괴물 '물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공포에 질린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반정 주도 세력인 영의정 심운(이경영)이 자신의 자리를 흔들기 위해 퍼뜨린 계략으로 의심한다.
이에 그동안 초야에 묻혀 지내던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을 불러 물괴의 출현이 사실인지 추적하도록 한다. 윤겸과 그의 오른팔 성한(김인권), 외동딸 명(이혜리), 왕이 보낸 허 선전관(최우식)이 팀을 이뤄 물괴를 쫓는다.
극은 제법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초반에는 살육의 주범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다가 괴수가 등장하는 중반부터는 추격 액션 장르로 전환해 정신없이 내달린다.
총제작비 125억원이 투입된 이 작품 주인공은 역시 괴수다.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 '머리가 둘에 눈이 넷인 암퇘지' 등으로 괴수가 묘사됐다. 제작진은 이런 기록을 토대로 전설의 동물인 해태의 형상에서 물괴의 모습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역병을 품고 있어 몸 전체가 붉은 종기로 덮여있고, 눈이 퇴화한 괴수는 지붕과 절벽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며 마구잡이로 사람을 공격해 집어삼킨다. 컴퓨터그래픽이지만, 이물감 없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극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침한 편인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주인공들이다.
김명민-김인권의 활약은 '조선명탐정'의 김명민-오달수 콤비를 떠올리게 한다. 이혜리와 최우식도 짝을 이뤄 활력을 불어넣으며 제몫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을 잃고 서사와 캐릭터들이 급격히 무너지고 만다. 왕을 비롯해 '괴수로 왕을 잡으려는' 심운, 심운의 오른팔 진용(박성웅) 그리고 백성들까지, 이들의 행동은 괴수의 등장과 함께 공감 궤도를 이탈해버린다.
의욕이 너무 앞선 대목도 많다. 피가 흥건한 괴수의 살육 현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보여준다. 사지가 잘리거나 역병으로 썩어가는 사체가 클로즈업으로 잡혀 보기 불편할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처럼 위기의 순간에 등장하는 유머와 러브라인은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주연 배우 모두 기존 영화 속 이미지를 그대로 반복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카운트다운' '성난 변호사'를 연출한 허종호 감독은 "어떠한 현상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서 이겨내지만, 한편으로는 그 존재로 인해 싸움하는 것을 현실에서 많이 봤다"면서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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