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도 피해가는 위대한 지도자?…러시아TV, 푸틴 대통령 미화방송(종합)

입력 2018-09-05 00:10  

곰도 피해가는 위대한 지도자?…러시아TV, 푸틴 대통령 미화방송(종합)
연금개혁 발표 후 지지율 80%에서 64%로 추락…'지지율 회복 노림수'
진행자 "곰도 푸틴보면 알아서 처신할 것"…야권 "스탈린 우상화 연상"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유철종 특파원 = 어린이를 사랑하고 야생에서 곰과 마주치면 곰도 알아서 도망친다는 자상하고 위대한 지도자는 누굴까. 러시아 국영방송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일요일 저녁(현지시간) 황금시간대에 최근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지지율 추락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을 미화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AP, AFP 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일요일인 지난 2일 저녁 국영방송 '로시야 1' 채널이 푸틴 대통령의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는 한 시간 분량의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 첫 방송을 내보냈다고 3일 보도했다.
친(親)크렘린계 언론인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매주 일요일에 방영될 예정이다.
국영방송의 대다수 프로그램에서 이미 푸틴 대통령 관련 내용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이번에 리얼리티쇼 형식의 프로그램까지 더해진 것이다.
첫 방송에서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리포터가 푸틴 대통령의 지난주 활동을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의 숲에서 버섯을 따는 모습, 다양한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 광부와 학생 등 평범한 러시아 국민과 만나는 장면 등이 전파를 탔다.
진행자인 솔로비요프는 "푸틴 대통령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거나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인간적이고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한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아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솔로비요프는 또 "푸틴은 너무나 활동적이고 업무 능력이 뛰어나 단련된 그의 측근들도 '대통령의 마라톤'을 간신히 견뎌낼 정도다. 그는 모든 일을 살피고 모든 것을 안다"고 칭송했다.
방송에는 또 최근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의 투바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나왔다.
진행자는 이 장면에서 "야생이고 곰도 있다. 만약을 대비해 경호원들이 적절히 무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곰이 푸틴 대통령을 본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적절히 알아서 처신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막으려는 조치의 일환이라는 것이 외신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높이는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연금법 개혁안에 대해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개정안에 일부 수정을 제안했지만 국민 불만은 여전한 상황이다.
현지 여론조사전문기관 '브치옴'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4기 집권을 시작한 5월 80%에서 지난달 64%로 떨어졌고, 이는 최근 4년 중 최저치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국민 50% 이상이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가할 준비가 돼 있다는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의 조사결과도 있다.
방송이 나간 날에도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필요한 개혁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푸틴 대통령을 찬양했을 뿐, 시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방송 후 "이는 크렘린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러시아 최대 방송 미디어 기업인) '전(全)러시아 국영TV·라디오회사'(VGTRK)의 프로젝트"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대통령과 그의 일정에 대한 정보가 왜곡 없이 정확히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권 성향 언론 매체들은 이 프로그램을 소련 시기 블라디미르 레닌 칭송 창작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시기의 TV 방송, 이오시프 스탈린 우상화 시기의 선전물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bschar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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