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생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유언했다면 상속재산을 받지 못한 딸은 아버지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1남 4녀를 둔 A씨는 1999년 2월 상속재산 전부를 아들 B씨에게 물려준다는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하고 9개월 뒤 사망했다.
유언에 따라 아들 B씨는 딸 4명과 아버지 재산을 나누지 않고 독차지했다.
생전 아버지 소유나 향후 취득하게 될 부동산, 사업과 관련한 권리, 진행·보류 중인 공사나 사업 일체의 권리, 청구채권, 현금·예금 자산, 유가증권 등 모든 재산이 B씨의 것이 됐다.
B씨는 아버지 명의로 된 일부 부동산 경매과정에서 매각대금 일부가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남매 4명에게 배당되자 아버지 유언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 배당액을 삭제하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사망한 A씨에게 큰 빚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생전 A씨에게 사업상 11억8천만원을 빌려준 C씨는 A씨 아내, B씨, 여동생 4명에게 법정 상속비율만큼 A씨 채무금을 나눠 내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1심은 B씨와 여동생 4명 등이 변론과 준비절차에서 C씨 주장에 대해 명백하게 다투지 않자 C씨 손을 들어줬다.
채무금을 나눠내라는 판결에 A씨 아내와 아들 B씨는 승복했으나, 재산을 하나도 상속받지 않은 여동생 4명은 억울하다고 항소했다.
2심인 부산고법 민사6부(윤강열 부장판사)는 상속재산 전부를 물려받은 B씨가 A씨 모든 재산은 물론 채무까지 포괄해 취득·승계하는 것이 맞고 상속재산을 받지 못한 다른 직계비속인 여동생 4명은 채무를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최근 판결했다.
재판부는 "재산과 달리 채무만을 A씨 직계비속 등이 그 상속분에 따라 승계하는 것으로 본다면 상속받은 재산이 없는 직계비속 등에게 망인의 생전 채무만을 전가하게 돼 불합리하다"며 "변제능력이 있는 자에게 상속재산 전부를 물려주고 변제능력이 없는 상속인에게 상속채무를 승계시키는 악용 가능성도 크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자가 아닌 상속인들에게 생전채무가 승계되는 것으로 본다면 재산을 물려받은 자는 상속재산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지만, 상속채권자는 재산을 보전할 수 없게 돼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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