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부족 없다던 정부, 그린벨트 풀고 소규모 사업 규제 완화해 공급 확대키로
청와대·여당은 "거래세 인하" 거론…정부는 "집값 안정 도움안돼, 원론적 의미"
(서울·세종=연합뉴스) 서미숙 윤종석 이율 기자 = 서울 집값 상승에 놀란 여권이 연일 부동산 관련 굵직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8·2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서울 집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당정청이 앞다퉈 진화에 나서는 형국이다.
4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2014년 8월 이후 지난 8월까지 4년 1개월(49개월) 연속 상승하고,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달 7억238만원으로 7억원을 돌파했다.
강남의 일부 아파트는 3.3㎡당 가격이 1억원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역대 최강의 규제책으로 꼽힌 '8·2대책'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다급함에 정부는 물론 정치권, 청와대까지 전방위로 나서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 "주택 부족하지 않다"→"공급 늘린다"
최근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공급확대가 대표적이다.
최근 당정청은 한 목소리로 서울 인근에 주택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얘기를 꺼내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같은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실수요자를 위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2022년까지 주택 공급 물량은 충분하며, 집값이 뛰는 것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투기 수요 때문"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국토부는 수도권 신혼부부희망타운 공급 확대 방침에 이어 지난달 수도권에 2022년까지 신규 확보하는 공공택지 목표량을 30곳에서 44곳 이상으로 14곳 이상을 늘리기로 하는 등 최근 '공급 확대' 방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44곳 이상의 신규 공공택지에서 나오는 주택은 36만2천호에 달한다.
여당과 청와대에서도 주택 공급 확대에 공감을 표시한 만큼 정부의 신규 택지 지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치권의 주문은) 수도권 택지를 조기에 확보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수도권 택지 조성 속도를 높이면 공급량도 당초 목표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추석 전에 아직 지구지정을 하지 않은 30곳 중 일부 택지의 위치를 정하고 언론에 공개할 방침이다.
현재 국토부는 성남 서현, 금토·복정, 구리 갈매역세권 등 14곳에 대해서는 지구 지정 등을 하고 언론에 위치를 공개했고, 30곳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통해 추석 전에 일부를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수도권에 신규 택지를 추가로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다.
현재 국토부는 서울 내부나 서울과 근접한 수도권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보전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나 국공유지, 유휴부지 등을 물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택 5만호를 공급할 수 있는 신규 택지 2곳을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5만호를 공급할 수 있는 택지는 위례신도시보다 규모가 큰 미니 신도시를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신도시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신도시 개발은 중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해 시장 불안을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5만호를 공급하는 택지를 공급한다는 등의 내용은 정부의 택지 공급 방침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규모가 큰 택지를 확보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도시보다는 소규모 택지를 분산 조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논의되고 있다.
앞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 도심개발이나 정비사업을 할 때 규제를 조금 완화해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국토부는 우선 소규모 재건축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자율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정비사업의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규모 재건축은 200가구 미만의 다세대·연립에서 하는 단지형 정비사업이고 가로주택정비는 1만㎡ 미만 가로구역에서 이뤄지는 블록형 정비사업이며, 자율주택정비는 집주인 2명 이상이 건축협정 등을 맺고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내용이다.
소규모 재건축과 자율주택정비사업은 올해 2월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신설돼 아직 뚜렷한 실적이 없는 상태다.
국토부는 사업 대상 주택의 허용 범위를 늘리거나 대출 혜택을 보강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업지역이나 준주거 지역에 공급되는 주상복합 등의 주택 비율을 높여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조정하면 되는 문제여서 중앙정부가 관여할 내용이 많지 않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상업지역 등에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주택 공급은 늘릴 수 있으나 일조권 문제나 교육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어 국토부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서울지역 공급 확대 방안으로 제안하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검토되지 않고 있다.
시장에 '규제 완화=집값 상승'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보유세 높이고 양도세 낮출까…정부는 "원론적 의미" 진화
당정은 지난달 세법개정안에서 발표한 보유세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달 30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3주택 이상이거나 초고가 주택 등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를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정부에서도 강력히 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종부세 인상안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이다.
종부세 부담이 대폭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초고가 주택'의 범위는 현재 논의 중이다.
종부세 인상에 맞춰 거래세 인하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인터뷰에서 '보유세를 높인다면 양도세 등을 낮춰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집값 폭등 사태가 없더라도 가격이 안정되면 자유롭게 거래하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엄밀하게 세법상의 거래세는 '취득세'이고 양도소득세는 '소득세'에 속한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들이 보유세 인상에 견줘 자주 거론하는 거래세는 양도세를 뜻한다. 업계에서는 주택 매물 잠김 현상을 완화하고 다주택자가 집을 팔도록 유도하기 위해 양도세 등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양도세 강화를 내세웠고 투기수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양도세 인하는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여당과 청와대에서 언급되면서 정부 정책 노선이 바뀔지 주목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거래세 인하 방안에 대해 "거래세 인하가 양도세를 말하는 것인지, 취득세를 말하는 것인지 명확지 않다"면서도 "(필요하다면) 종부세 개편 등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제 개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양도세가 인하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유주택자의 주택 추가 구입을 막기 위해 청약조정지역 내 양도세를 중과하는 등 사고파는 세금을 높여놨는데 양도세 인하는 집값 안정 대책으로 적절히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양도세는 주로 다주택자에게 부과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때 양도세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장하성 실장이) 보유세는 높이되 거래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큰 방향에서 그렇게 가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취득세 인하 가능성도 작다. 현재 정부는 앞서 지난달 발표한 신혼부부에 대한 취득세 인하 외에 다른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거래세인 취등록세를 전반적으로 인하하는 것은 지방재원과 직결되기 때문에 방향은 맞더라도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지방의 반발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행전안전부 관계자도 "집값 안정 대책과 취득세 인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인하 가능성을 일축했다.
임대사업자의 세제 혜택 축소,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 등의 규제도 병행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 등록 임대사업자에 대한 양도세 등 세제 혜택이 과하다고 밝히고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부는 "시장이 과열된 지역에서 신규 주택을 취득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 일부 세제 지원을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토부는 현재 투기지역에서 주택을 새로 구입하고 임대등록을 하는 경우 세제혜택을 줄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또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 현상으로 특정지역에 주택수요가 몰리는 점 등을 고려해 일시적 2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간을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청약조정지역 내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를 위한 거주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sms@yna.co.kr, bana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