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주문형 테마 영화제'로 확대·발전시키겠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이용관(63)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내년 부산영화제에 남북한 영화학자들을 초청해 남북 공동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동호인들이 직접 프로그래밍해 원하는 테마의 영화를 함께 보고 교류하는 '주문형 테마 영화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부산영화제도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부산영화제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이런 내용을 포함해 다양한 비전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남북 영화교류 계획과 관련, 북한영화를 경쟁하듯이 영화제마다 상영하기보다 학술적인 측면에서 먼저 접근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부산영화제는 노하우와 경험을 이미 갖춘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부산영화제는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 북한영화를 상영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영화 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교류할 방안이 무엇인지, 한국영화 100주년 논란과 관련해 남북이 영화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 남북 영화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를 내년 영화제에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수장고에 희귀필름을 포함해 약 5만 편의 영화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보물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런 필름들이 훼손되지 않게 디지털 작업 등을 먼저 하고, 사실상 제작이 중단되다시피 한 북한의 영화 환경부터 개선하는 등 장기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국내 영화계는 1919년 제작된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를 한국 최초의 영화로 보고 해마다 기념행사를 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최초의 한국영화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온전한 극영화가 아니라 연쇄극(실연과 영화를 섞어 상연하는 극)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북한도 1919년을 출발점으로 생각하는지 논의해보자는 것"이라며 "영화제일수록 본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부산영화제를 관객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주문형 테마 영화제'로 확장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올해 영화제 기간(10월 4∼13일)에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에서 부대행사인 '커뮤니티 비프'를 시범적으로 여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는 "'커뮤니티 비프'는 시민들이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일종의 테마 영화제"라며 "2년간 시범 운영한 뒤 확대 및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부산 중앙동 계단에서 야외상영한다. 영화 속 계단 살인 장면의 실제 촬영지로, 부산 지역 5개 단체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 이사장은 "주문형 테마 영화제는 전국의 다양한 동호회가 '장국영 회고전' '의학 관련 영화 모음전' 등 다양한 테마를 만들어 신청하면 부산영화제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개념"이라며 "동호인들은 부산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교류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객(동호인)은 해당 동호회가 직접 모아야 하며, 영화 수급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화제는 8명의 프로그래머가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각 지역의 대표 영화 300편을 엄선해 '이런 경향이 있다'라고 보여주는 식이었죠. 영화제를 1년에 열흘만 하다 보니 가성비가 낮았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 영화제가 결합하면 온라인·오프라인에서 1년 365일 다양한 행사가 열릴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부산영화제는 전용관 '영화의전당'이 있어서 이런 행사가 가능합니다."
이 이사장은 현재 분리 운영 중인 부산영화제와 영화의전당을 합치자고 부산시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부산영화제 발자취를 따라 걸어온 인물이다. 중앙대 영화학과 학과장을 거쳐 1996년 부산영화제 출범 당시 수석프로그래머로 일했고, 2010년 집행위원장이 됐다.
그러나 '다이빙벨' 사태로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과 갈등을 겪다가 2015년 12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부산시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6년 부산영화제가 민간 이사 체제로 전환된 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취임했으나 사무국과 갈등으로 지난해 10월 동반 사퇴했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그의 본업은 교수로, 부산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학장직을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은 "영화제로 다시 안 돌아오겠다고 떠들었는데, 막상 돌아오게 돼 뻘쭘하고 면목이 없었다"면서 "취임 이후 많은 영화인, 인문학자, 예술인 등을 만나 영화제의 배타성과 소통 문제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영화인뿐만 아니라 시민과 전국 동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영화제에 스타와 영화인들의 발길이 예전보다 준 것 같다고 말하자 "모든 영화제의 숙제"라며 "스타를 모셔오려면 예산상 의전이나 호텔, 안전 문제 등 여러 복잡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지만, 한동안 그런 것들에 신경을 못 썼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재정비해 초청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올해를 부산영화제 화합과 정상화,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만들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 소통을 중시겠다"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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