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재개 모색 '로우키' 행보…김정은 연설도 생략
김정은, 시진핑 특사 리잔수와 손 맞잡고 북중우호 과시 눈길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9·9절)인 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없이 열병식을 치른 것은 미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교착의 연속이던 북미협상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 방북으로 활로를 모색중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친서' 소통도 재개된 상황에서 굳이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평양에서 직접 열병식을 취재한 외신을 종합하면 열병식에서는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전날 북한 건군절 열병식 때 나왔던 탄도미사일 역시 이번 열병식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체제 선전과 주민 결속을 위해 열병식 자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렵게 살려 나가고 있는 북미협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9·9절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나 인민군 창군 절(4월 25일)과 함께 북한의 대표 국경절이고, 이번 9·9절이 70주년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이 이번 기념행사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지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 위원장 역시 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며 정권수립일 기념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로 더욱 엉켜버린 북미 협상의 실타래가 조심스럽게 풀리기 시작하는 국면에서 김 위원장 역시 전략무기를 대대적으로 과시하며 미국에 부담을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아흐레 후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이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돼 비핵화와 체제보장 교환을 위한 외교전이 숨 가쁘게 펼쳐지는 와중이라는 점을 십분 고려한 것이다.
특히 남측 특사단을 통해 대미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까지 보낸 김 위원장으로서는 정권수립 70주년을 기념한 대대적인 열병식이 자칫 상황을 꼬이게 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특사단 방북 이후 본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이후 북미협상을 해야 되는 마당이라 최근 정세를 고려해 열병식을 축소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정권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별도의 연설을 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연설하지 않음으로써 행사의 전체적 규모가 더욱 축소된 느낌을 준다.
이미 문 대통령의 특사단 등을 통해 대미·대남 메시지를 전한 터라 연설의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주민들에게 내세울 만한 경제 성과가 없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연설이 없는 것이 이례적인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 아닌가 싶다"면서 "주변 (정세)도 의식하고 대내적으로 얘기할 것도 없지 않았나 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6차례 열병식을 하면서 올해 2월 건군절 열병식을 포함해 세 차례 연설했다. 이번 열병식에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핵 무력이 아닌 정권의 경제적 목표를 강조한 개회사를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 권력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과 주석단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들어 올린 모습도 눈에 띈다.
북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는 동시에 권력서열 3위를 보내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예우를 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한 열병식 때도 방북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주석단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며 중국을 '특별대우'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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