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문해 교육생 시화전…"처음으로 쓴 편지 갓 난 딸 안듯 품었다"
전남 잠재 문해 교육 수요자 26.5%…"가족 도움 필요"
(무안=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전남도청 1층 로비에서는 지난 4일부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데우는, 훈훈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얼핏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의 그림일기 같지만, 작가(?)들의 나이가 범상치 않다.
시·군 평생 교육시설의 성인 문해(文解) 교육을 이용한 60∼80대 '늦깎이 학생'들의 글과 그림을 선보이는 시화전이다.
완도 소망한글학교에 다니는 김모(73) 할머니는 '까막눈을 떳(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만학의 기쁨을 진솔하게 담아 눈길을 끌었다.
"이웃집 할매와 싸웠다. 글씨도 모른 것이 말은 잘한다고. 정말 상처 되는 말이었다. 그 길로 한글학교를 찾았다. 입학을 하고 정말 열심히 배웠다. 처음에는 할매가 얄미웠다. 이제는 정말 고마울 수가 없다. 까막눈을 뜨게 한 할매 정말 고맙다."
뿔이 나 있는 이웃집 할매, 한글학교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 곁들인 그림은 미소를 자아낸다.
손녀, 딸,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노인들의 글이 주는 감동은 유명 시 못지않다.
순천 향토학교 심모(60) 할머니는 엄마 없이 자라는 게 안타까웠던 손녀의 선생님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답장할 수 있어 '문화인'이 됐다며 기뻐했다.
제목은 '내 문자 실력 뿜뿜'이다.
목포 공공도서관 훈민정음 대학에 다닌 이모(77) 할머니는 "글을 배우면 가장 먼저 사랑하는 딸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팔십 고개에 편지봉투에 써본 딸의 이름을 갓난아기 너를 안아보듯이 가슴으로 품어본다"고 썼다.
여수시청에서 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한 정모(80) 할머니는 반대로 어머니에게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정 할머니는 "받아쓰기 백점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제일 먼저 알려드립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라는 글과 함께 자신인지, 어머니인지 알 듯 말 듯한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았다.
완도 섬사랑평생교육원 출신인 김모(76) 할머니는 전화 책에 꼭꼭 숨어있던 앞집 동생, 요리조리 피해 다니던 뒷집 언니가 글자를 배우고 나니 전화 책에서 "동생 나 여기 있네", "언니 나 여기 있어"하고 손짓한다며 유쾌하게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시화들은 다음 달 5일 강진 종합체육관 제2 체육관에서 열리는 전남 문해 한마당 행사에서도 선보인다.
2015년 발표한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중등 학력 미만으로 잠재적 문해 교육 수요자로 분류된 국민은 13.1%, 고령 인구가 많은 전남은 2배 이상인 26.5%에 달했다.
최혜은 전남 평생교육진흥원 평생교육사는 "시·군마다 프로그램, 시설이 있고 수강료도 공짜이거나 월 1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아 결심만 하면 어렵지 않게 문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다만 부끄러워서 마음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인문해 교육에 관한 문의는 전남평생교육진흥원(☎ 061-287-9555)에 하면 된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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