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사형제 폐지 수순 밟아야"…국제규약 가입권고

입력 2018-09-11 14:00  

인권위 "사형제 폐지 수순 밟아야"…국제규약 가입권고
'사형 폐지 위한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 권고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우리나라가 사형제 폐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국제규약에 가입할 것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다.
11일 인권위에 따르면 전날 열린 2018년 제13차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는 '사형 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권고 안건을 의결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이번 전원위원회에서는 국민 법 감정 등에 대한 논의 끝에 최 위원장을 포함한 전체 11명 위원의 만장일치로 권고안을 의결했다.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는 1989년 12월 제44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사형 집행 중지 의무와 폐지 절차 마련, 전쟁 중 군사적 범죄에 대한 사형 유보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는 한국과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 4개국만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등 국제인권기구에서는 우리나라에 사형제 폐지와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지속해서 권고해왔다.
인권위 역시 2005년 4월 국회의장에게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고, 2009년 7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 폐지 의견을 제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군형법 내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의견표명도 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61명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1997년 12월 30일 이후 20년 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 집행 정지상태다.
인권위는 "그간 수차례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의 국민은 범죄 피해자 가족의 극심한 고통과 상실감, 정의실현, 범죄 예방 효과 등을 이유로 흉악 범죄에 대한 사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냈다"며 "이런 국민의 법 감정과 우려가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지만, 사형을 통해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만이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유일하고 진정한 보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권고를 통해 정부가 올해 12월 유엔총회에 상정될 사형제 모라토리엄(집행정지)에 관한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기대한다"며 "의정서에 가입함으로써 사형 집행정지를 공식화하고 향후 사형제에 대한 국민 합의를 끌어내는 등 단계적으로 사형을 폐지하기 위한 조처를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전원위원회는 의정서 가입권고에 관한 논의를 넘어 사형제 존폐 자체에 관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전원위에 참석한 한 위원은 "사형제 폐지가 인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고, 사형제 존치는 수구적이라는 관점은 지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모든 인간의 생명이 존엄한 것은 맞지만, 강도 살인, 존속 살해 등 흉악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희생자와 그 가족이 입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느냐"고 사형제를 옹호했다.
반면 다른 위원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형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았다고 해서 그것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보상일 수 있겠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형제가 있어야 살인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인간의 생명을 범죄 예방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위원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감형에 대한 피해자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 댓글을 보니 '자기 자식이 당했다면 판사가 이런 판결 내리겠느냐'는 것도 있더라"며 "이처럼 여론의 기저에는 응보(應報)주의적 관점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비례원칙처럼 살인범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만이 응보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자유형도 응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법 감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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