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프랑스군 고문받다 숨진 알제리독립투사 미망인 방문해 사죄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인 150만명 숨져…佛 정부 차원 '고문' 인정 처음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숨진 알제리인의 죽음과 관련해 당시 프랑스군의 고문·살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1957년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실종된 모리스 오댕이 당시 그를 투옥한 프랑스군으로부터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공식 인정했다.
마크롱은 이날 프랑스 파리 근교에 거주하는 오댕 미망인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사죄했다.
그는 미망인 조제트 오댕 여사에게 "우리가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인데, 미망인께 이제 용서를 구한다. 지금까지 해오신 투쟁도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고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이 전했다.
오댕 여사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자택을 직접 방문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엘리제궁도 마크롱의 방문에 앞서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알제리인들에게 체계적으로 고문을 자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가 이처럼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자국군이 알제리인들을 고문했다고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1957년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대 수학과 조교수이자 알제리공산당의 당원이었던 오댕은 프랑스군 공수부대에 의해 자택에서 체포됐다.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던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대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혐의였다. 체포 당시 그는 자녀 셋을 둔 25세의 청년이었다.
오댕은 체포된 뒤 프랑스군에게 지속해서 고문을 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 처리됐다.
프랑스군은 오댕이 다른 군 교도소로 이감되던 중에 탈출했다고 유족에게 밝혔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난 뒤 조사 결과 오댕이 탈출했다는 프랑스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고, 그가 프랑스군에 투옥된 당시 사망한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2014년에야 오댕이 투옥 중에 숨진 것만을 인정했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프랑스로부터 100년 넘게 식민통치를 받던 알제리에서 1954년 발발해 8년간 이어졌다.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장성들의 반란 등 정치적 위기 속에 알제리의 독립을 최종 승인했다.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군·경과의 전투와 체포·투옥 과정에서 알제리인 15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군이 당시 알제리인들을 투옥하고 고문·살해한 역사는 그동안 프랑스에서 금기시돼왔다.
마크롱은 작년에도 두 차례 알제리를 방문해서 방송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사죄를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인 작년 2월 알제리 방송과 인터뷰에서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의 행태에 대해 "정말 야만적이었으며 사죄해야 한다. 반인도주의적 범죄였다"고 말해 국내에서 거센 비판여론에 직면했다.
작년 12월에도 알제리에 방문해 알제리 독립전쟁 참전용사 묘비에 헌화하기도 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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