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앨리슨의 '결정의 본질'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북한은 왜 비핵화를 결심했을까? 미국은 왜 북한이 내민 손을 잡았을까?
지금쯤은 정치외교 전문가는 물론 어지간한 일반 시민들까지 이 같은 물음에 나름의 수긍할 만한 답을 찾았을 듯하다.
하버드대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의 역작 '결정의 본질'(원제 Essence of Decision·모던아카이브 펴냄)은 사람들이 국가의 행동을 분석하고 판단할 때 저마다 의식·무의식적으로 취하게 되는 관점에 일정한 패턴이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외교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관점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국가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분석 모델을 제시한다.
책에서 세 가지 모델은 현대사의 극적인 사건인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소련-쿠바 3국에 의해 조성되고 소멸된 핵전쟁 위기를 설명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 적용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합리적 행위자 모델'이다. 이는 거대한 복합조직인 국가를 의인화해 한목소리를 내는 합리적 행위자로 상정하고 특정 행위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고자 한다. 이를테면 북한의 비핵화 결정은 체제 보장과 경제난 해소를 위한 유학파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이라고 해석한다.
'조직행태 모델'은 국가 행동을 한 사람의 결정이라기보다 조직 운영절차나 문화, 논리에 따른 산출물로 보는 관점이다. 이 경우 북한의 비핵화 결정의 배경을 김정은 위원장 1인보다는 대외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최고인민회의-내각-외무성과 조선노동당-당중앙위원회-국제부의 운영방식, 역량과 한계에서 찾는다.
마지막 '정부정치 모델'은 정치를 일종의 경기로, 국가 행동은 협상 게임, 즉 경기자들 간의 정치적 흥정의 결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선 김정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같은 주요 경기자들에 주목하게 된다.
저자는 문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러한 세 가지 렌즈를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제1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분적으로 겹치고 서로 경쟁하기도 하는 여러 개념 모델을 동원해야 외교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은 그레이엄 앨리슨의 하버드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내용을 담았으며, 저자가 30세를 갓 넘겼던 1971년 초판이 출간돼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9년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교수와 함께 개정판을 냈다.
국내에는 2005년 '결정의 엣센스'(모음북스 펴냄)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됐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중 관계를 분석한 최근 저서 '예정된 전쟁(원제 Destined for War·세종서적 펴냄)으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역사 인식 방식에서 착안해 강대국 간 전쟁을 기존 패권국과 신흥국 간의 패권 다툼으로 파악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을 널리 유행시켰다.
김태현 옮김. 592쪽. 2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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