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R&D부문 법인분리 움직임에 노사 갈등 재점화

입력 2018-09-16 06:31   수정 2018-09-16 10:35

한국GM, R&D부문 법인분리 움직임에 노사 갈등 재점화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법정관리 위기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회생한 한국지엠(GM)이 또다시 노사 갈등을 겪으며 정상화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설 법인 추진을 놓고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가 크고 불신이 깊어 당분간 파열음이 이어지리란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 사측 "글로벌 기지로 확대" vs 노조 "철수 위한 포석"
1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글로벌 제품 연구개발(R&D) 업무를 집중적으로 전담할 신설 법인 설립을 연내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단일 법인을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법인 2개로 인적분할하고 연구개발 부문에 신규 인력을 채용해 글로벌 연구개발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연구개발 법인에는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파워트레인 등 관련 부서가 포함된다.
한국GM은 기존에 경·소형차 위주로 기능했던 디자인센터의 지위를 격상시켜 GM 본사의 글로벌 베스트셀링 모델인 중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제품의 차세대 디자인 및 차량개발 업무를 가져오려고 한다. 이를 위해선 법인분리가 필수라는 게 사측의 주장이다.
한국GM에 따르면 제품 연구개발은 GM 글로벌 임원들이 직접 관여하는 구조로 돼 있다.
지금처럼 한국GM이 국내에서 생산하는 경차, 소형차 위주로 제품 개발을 맡을 때는 연구개발 부문을 생산공장과 함께 단일 법인 내에 일부로 두더라도 업무상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생산·판매되는 제품 개발을 주도하려면 GM 글로벌 임원들이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본사와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법인을 별도로 둬야 한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법인을 분리해야 신속한 의사결정과 업무 효율화가 가능하고 신규 개발 물량을 확보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내년부터 개발에 착수할 GM의 물량 배정을 앞두고 연내 법인 설립을 완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법인 신설 계획이 구조조정의 발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단 법인을 쪼갠 뒤 한국GM을 GM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시켜 신설 법인만 남겨놓고 공장은 장기적으로 폐쇄하거나 매각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인분리로 조합원을 빼내 기존 노조 세력을 약화해 철수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하려 한다는 의구심도 깔렸다.
무엇보다 노조는 현 구조가 유지돼도 연구개발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오히려 분리했을 때 불필요한 인적조직을 확대하느라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노조 주장에 대해 한국GM 사측은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 산업은행 투자를 확약받고 10년 단위의 정상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철수할 이유가 없다"며 "유럽 오펠이나 중국 상하이GM도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법인을 별도로 운영했거나 현재 운영하고 있으므로 한국만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역으로 호주의 경우 GM 홀덴이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부문을 단일 법인으로 두고 있었음에도 철수했던 것처럼 법인분리는 공장 폐쇄와 관련이 없다는 게 사측의 논리다.



◇ 산업은행도 제동…비토권 행사 여부 불투명
그럼에도 이미 한차례 철수 사태를 경험한 만큼 노사 간 불신이 깊은 탓에 갈등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노조 반발이 거세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일단 절차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국GM이 충분한 설명 없이 이사회 및 주주총회 소집 등의 절차를 신속하게 밟으려 하자 일방적인 법인 설립이 기본 협약에 위배된다며 주총 개최 금지를 목적으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이르면 다음 주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 이번 사태의 추이도 달라질 전망이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한국GM이 계획한 연내 신설 법인 설립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만족할만한 정보를 얻고 노조 반발이 해결되기 전까지 법인 설립을 위한 후속 절차가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한국GM은 계획대로 이사회 및 주총을 열어 일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노조가 강력 대응에 나서면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은행이 신설 법인 설립과 관련해 비토권(거부권)을 갖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토권은 특별결의사항과 제3자에게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자산을 매각·양도·취득할 때 발휘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가처분 신청과 별도로 비토권 행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내부 검토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은 산업은행과 실무진 간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카허 카젬 사장이 직접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신설 법인 추진 논란 외에도 한국GM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 진행형이다.
고용노동부는 창원공장 협력업체 근로자 774명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해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한 데 이어 부평공장 17개 협력업체 근로자 888명 역시 불법 파견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한국GM은 경영난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직접고용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비정규직 노조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GM 노조는 최근 사측에 단일 법인 유지를 전제로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연구개발, 부평 및 창원공장 불법파견 판정에 따른 비정규직 전원에 대한 정규직화 등을 논의하자며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은 특별교섭 요건이 되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bry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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