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미술가' 제프 쿤스 "사람이 중요…예술은 수단"

입력 2018-09-17 17:03   수정 2018-09-17 17:09

'가장 비싼 미술가' 제프 쿤스 "사람이 중요…예술은 수단"
'파라다이스아트스페이스' 개관 맞아 방한…'게이징볼' 연작 전시
408평 공간에 데이미언 허스트·이배·김호득 작품도 전시


(영종도=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황금빛 오렌지색 풍선 여러 개를 빵빵하게 분 다음, 팔다리 몸통처럼 이어붙인 듯한 거대한 강아지 형상. 2013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5천840만 달러에 팔려 제프 쿤스(63)에게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안겨준 조각 '풍선개'(Balloon Dog)다.
사업수완과 홍보능력이 남다르다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지만, 쿤스는 '큰 손'부터 대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등에 업고 앤디 워홀을 잇는 팝아트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신세계 본점에 그의 보라색 하트 조형물 '세이크리드 하트'가 설치됐을 당시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뿌린 바 있다.
이후 좀처럼 한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제프 쿤스가 17일 인천 영종도를 찾았다. 파라다이스시티에 새롭게 둥지를 튼 현대미술 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입구에는 쿤스의 '게이징 볼' 연작 중 하나인 '파르네세 헤라클레스'가 놓였다.
높이 3.26m에 이르는 우람한 헤라클레스 석고상으로 파란색 유리공, 즉 게이징 볼이 그 근육질 어깨에 살짝 놓여 있다. 작품을 올려다보는 관람객 자신과 주변 모습이 공의 매끈한 표면에 등장해 흥미를 자아낸다. 작가는 조각뿐 아니라 명화에도 파란 공을 박아넣는 '게이징 볼'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게이징 볼은 구(球)인데 이는 가장 순수한 형태이며 관대함과 관용의 형태"라면서 "360도로 반사되는 게이징볼은 여러분을 비춰주면서 우리 모두의 잠재력을 찬양하는 존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조각품은 그 스스로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어떻게 보면 영원한 아이디어의 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르네세 헤라클레스'는 고대 청동조각을 로마의 글뤼콘이 대리석으로 다시 모각한 것이다. 쿤스가 본뜬 '파르네세 헤라클레스'는 연약한 석고로 고대의 슈퍼 영웅 헤라클레스를 표현하는 역설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19세기에는 마을마다 고전 작품을 석고로 복제해 대도시에 가지 않아도 자체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라면서 "파라다이스아트스페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예술품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트바젤 홍콩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관람객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 작가는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인 것 같다"라면서 "예술은 사람이 서로를 중시여기고 그 잠재력을 찬양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는 1, 2층 합해 408평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쿤스를 비롯해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대형 작품을 설치해 힘을 줬다.
'파르네세 헤라클레스' 맞은편에는 역시 가장 비싼 작품가를 자랑하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 연작 중 최대 작업이 걸렸다. 작가는 경쾌한 색으로 이뤄진 회화에 독성 화학물을 뜻하는 제목을 붙여 삶과 죽음을 곱씹는다.
이번 기획전시실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숯의 화가' 이배, 평면 회화를 넘어 한국화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김호득 작가가 장식했다.
이배는 가야산 가마에서 직접 구운 숯덩어리들을 얼기설기 묶은 거대한 숯 구조물들을 한지로 마감한 바닥에 설치했고, 숯을 잘라 캔버스에 붙인 회화 한 점도 벽에 걸어놓았다.
김호득 '문득, 공간을 그리다'는 먹물을 푼 거대한 정사각형 수조 위에 33장 한지를 일렬로 설치한 작품이다.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이는 한지의 그림자와 먹물 위 잔잔한 파동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관람객을 절로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날 개관기념식에는 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이들 부부는 미술전문 계간지 '아트뉴스'가 11일 발표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처음 합류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올해 유일하게 순위에 들었다.
3천여 점을 소장한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을 이끄는 최 이사장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의 올해 한국 수상자로도 결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최 이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주 권위 있는 상인데 제가 (수상)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라면서 "선대 회장님께서 1989년 문화재단 설립 후 그동안 쌓은 업적이 빛을 발하는 순간 같아서 제가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다"고 밝혔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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