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갑질신고센터'·교육청 '갑질 담당관' 운영
"사고방식 전환 없이는 공직사회 갑질 근절 안 돼"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간부 공무원의 갑질 행위는 상습적입니다. 전 부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갑질 행위자가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광주시 공무직 노동조합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주장하며 갑질 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광주에서는 시립도서관 간부가 소속 직원들에게 욕설과 갑질을 수시로 했다는 진정서가 접수된 뒤 시 감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면서 '공무원 갑질'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공직사회의 '공무원 갑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작년 7월이다.
육군 대장 부부가 공관병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텃밭에서 일을 시키는 등 가혹한 지시를 일삼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공관병 갑질' 논란에 대해 "관행적 문화에 대한 일신이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 후 중앙 부처와 광역·기초 자치단체, 공기업이 앞다퉈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공무원 갑질'은 여전히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있다.
공무원 갑질이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뿌리내렸고,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 중앙정부에서 공기업까지…뿌리 깊은 갑질 논란
행정안전부 역시 공무원 갑질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행안부 감사관실 조사관이 경기 고양시 공무원을 개인 차량에 태우고 1시간 30분 동안 고압적인 태도로 막말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조사관은 즉시 대기 발령됐고 행안부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 근절 의지를 밝혔지만 김부겸 장관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김 장관은 "(최근 발생한 일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뼈를 깎는 성찰과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반드시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공무원 갑질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구 중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자신이 관리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을 가족묘 벌초에 동원하고 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내 일을 시켰다는 의혹을 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청주시설관리공단은 기간제 근로자 2명에게 수당도 주지 않고 야간 당직근무를 1년 넘게 시켰다가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1인당 1천여만 원의 수당을 뒤늦게 지급했다.
충북의 한 국립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학생 선발 과정에서 수험생들에게 인권 침해성 막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해임됐다.
부산진구에서는 지난달 부임한 부구청장이 업무시간에 여직원에게 노래를 시키고 셀카를 찍어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부구청장은 대기발령 조처됐지만 직원들은 "성에 관한 그릇된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번 같은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게 지금의 공직사회"라고 꼬집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진구지부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찬물을 끼얹고 성 평등에 대한 수년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위계적인 낡은 의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 일벌백계 공언했지만…효과는 '글쎄'
공무원이나 산하 기관 직원들의 갑질 논란과 금품·향응 수수 의혹이 그치질 않자 각급 자치단체와 산하 공기업들은 앞다퉈 '갑질 피해 신고·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시·도 교육청도 '갑질 전담 감찰담당관'을 지정, 지역교육청과 학교의 행동강령 책임관을 갑질 담당관으로 지정했다. 또 홈페이지 신고센터에 갑질 행위 게시판을 만들어 신고도 받고 있다.
개인적인 일을 부당하게 지시하거나 강요하는 상급자나 그 가족의 행위를 내부 직원이나 일반 시민들로부터 신고받아 엄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신고 사항이 갑질로 판명 날 경우 당사자를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벌 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충북도 출자기관인 충북개발공사는 '갑·을'이 아닌 '동·행'으로 표기된 이색 계약서를 지난해 하반기 도입, 시행하고 있다.
우월적인 지위를 가리키는 뉘앙스의 갑·을보다는 '함께 행복하자'는 의미에서 동·행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는 게 충북개발공사의 설명이다.
충북개발공사 계용준 사장은 "용어 하나 바꾼다고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변화의 시작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공무원 갑질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구 중구청 공무원의 갑질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5월 이 지역 3개 시민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해 "피해자가 진정서를 접수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진정 취하를 종용하는 등 구청 측의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벌백계를 공언했지만 팔이 안으로 굽듯 공직사회가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설 수 있고 피해자는 속만 태우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길 여지가 여전함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충북대 사회학과 허석열 교수는 "우리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사회 전반의 권위주의는 그대로 남아 있고 약자가 자기주장을 펴기 힘든 문화도 아직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작은 문제부터 균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갑질 문화 해소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재홍, 노승혁, 양지웅, 이덕기, 정회성, 손형주, 심규석, 최은지, 황봉규, 황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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