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 서화평석' 펴낸 박희병 서울대 교수
"이인상은 감각 아닌 정신의 힘을 밀고 나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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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리나라는 근대 이래 분과 중심으로 학문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인상 회화는 문학적, 사상적, 서예적 맥락을 모두 갖고 있어서 그림만 들여다봐서는 온전히 해석되지 않아요. 분과학문의 벽을 허무는 통합인문학이 필요합니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1710∼1760)이 남긴 회화와 글씨를 집대성한 두툼한 책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전 2권, 돌베개 펴냄)을 출간한 박희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나 "통합적 연구를 수행해야 한국 학문의 지적 수준이 높아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 연구실은 한국문집총간을 비롯한 각종 서적으로 빈틈이 없었다. 서가에 책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 바닥에도 책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는 "연구실이 조금 좁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연암(燕巖) 박지원, 담헌(湛軒) 홍대용에 관한 책을 펴낸 바 있는 박 교수는 지난 20년간 이인상이라는 인물에 매달렸다. 그 첫 번째 성과가 2016년 선보인 이인상 문집 '능호집'(凌壺集, 전 2권) 완역본이고, 두 번째 결실이 서화평석이다.
이인상은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白江) 이경여(1585∼1657)의 후손이지만 서얼이었다. 벼슬은 종6품인 찰방에 불과했으나, 평생 염치와 지조를 지키며 살았고 지식인 집단인 단호(丹壺)그룹을 이끌었다.
서화평석에 실린 회화와 글씨는 각각 64점과 127점. 이 가운데는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있다. 박 교수는 서화는 실물을 봐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데, 자료를 수집하기 매우 어려웠다면서 "다시 하라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박 교수는 김홍도·신윤복·장승업을 감각이 뛰어난 화가로 분류하면서 "이인상은 감각이 아니라 정신의 힘을 밀고 나간 화가로, 서양의 고흐와 통하는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이인상의 서화를 통해 한국의 예술가가 도달한 높은 정신세계를 체험하고 자기화할 수 있다"며 이인상에 관한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과 정신을 웅숭깊게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가 꼽는 이인상의 또 다른 특징은 서예와 회화에 모두 능했다는 점이다. 이인상은 강건하고 졸박한 글씨를 쓰는 1급 서예가이면서 그림도 잘 그렸다.
이에 대해 그는 "명말 화가이자 서화 이론가인 동기창(董其昌·1555∼1636)은 문인화를 필법(筆法)으로 그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인상이 그러했다"며 "이인상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필획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인상 그림은 서얼이라는 개인적 신분보다는 그가 참여한 단호그룹의 세계관을 근거로 해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단호그룹은 명에 대한 의리를 중시해 청이 중국을 지배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인상이라는 예술가에게 최대 화두는 '도가 사라진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어요. 그래서 이인상의 세계관은 비극적 뉘앙스를 띠기도 하지만, 그는 홀로 서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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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물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박 교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통합인문학을 해야 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통합인문학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제시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 문명 시대에 고전적 의미의 학문은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며 "비판과 사유를 중시하는 통합인문학은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없는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연구 방법론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인상 연구를 마무리한 박 교수는 이제 소설사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도 소설 내용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하는 과정, 작가의식, 지성사적 환경을 엮어 통합연구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소설사와는 체계와 문제의식을 달리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며 "오래전부터 머릿속에서 구상했다"고 말했다.
"소설사 집필이 끝나면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19세기 예술사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미 추사에 대한 공부는 해왔습니다. 과거에는 김정희로부터 소급해 이전 시기 미술사와 지성사를 본 측면이 있어요. 저는 이인상 그룹으로부터 김정희를 보려고 합니다. 김정희의 상을 달리 잡아볼 것입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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