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동선언에 비핵화 구체적 조치 명시 "김정은 고독한 결단"
향후 북미 협상 고비마다 중재자 문 대통령에 기댈 듯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박 3일간의 평양정상회담 기간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파격적 리더십'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우선 김 위원장은 향후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결정할 비핵화 조치에서 나름 파격적 결단을 내리는가 하면 평양을 처음 찾은 문재인 대통령을 최고의 의전으로 맞으며 전 세계에 최고지도자의 '위상'과 능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보다 훨씬 단호한 어조로 비핵화 의지를 피력,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진정성을 각인시키려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김정은 "핵무기 없는 평화의 땅 노력 확약"…남북정상 공동기자회견 / 연합뉴스 (Yonhapnews)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생방송으로 중계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육성으로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 마련"을 직접 공언까지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으로 '핵무기 없는', 즉 비핵화를 전 세계에 확언하는 첫 순간이었다.
특히 남북 정상이 서명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담은 것은 종전 같으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지난 4월 '판문점선언'과 6월 북미정상의 '공동성명'에 명기된 비핵화 언급은 '완전한 비핵화 실현'이라는 원론적인 표현에 그쳐 진정성에 물음표가 붙었다. 그러나 이번 평양공동선언에는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지"한다고 못 박고 이를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세간의 의심을 불식시켰다.
그동안 검증이라면 극구 회피하던 데서 한발 물러나 '참관'이라는 나름 북한식 표현으로 사실상의 검증 수용 결단을 내림으로써, 미국이 요구하는 필수적인 검증 과정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도 진일보한 조치다.
또 평양공동선언에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했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명시함으로써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이런 내용이 명시된 공동선언은 북한 전 주민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TV를 통해 전파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비공개'가 아닌 '공개'로, 국제사회와 북한 전 주민에게 '확약'한 것으로 결단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아무리 절대권력자라 해도 이 같은 결단은 체제의 존폐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북미 및 비핵화 협상의 북한 핵심 실무진은 군부 출신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필두로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대부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김정일 정권의 전략에 길든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보수적' 실무진에 포진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의식하며 북미 협상을 이어가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나 홀로 결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 실무진 중 누구도 감히 핵 협상에서 미국에 양보하는 방안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언할 수 없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모두가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는 실무진에 둘러싸인 채 진전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고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마중 나온 김정은 위원장과 '포옹 인사' / 연합뉴스 (Yonhapnews)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남북정상회담 기간 문 대통령을 매일 매 순간 전례 없는 최고의 의전으로 예우하며 북미 및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 문 대통령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협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열린 첫날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역사적인 조미(북미) 대화 상봉의 불씨를 문 대통령께서 찾아줬다"며 "조미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첫날 만찬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며"라고 감사를 표시해 관심을 끌었다.
그런가하면 김 위원장은 19일 집단체조 공연이 열린 5월1일 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문 대통령의 걸음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자고 외치는 파격을 이어갔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단순히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과 함께 앞으로의 기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평양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 위원장의 이런 파격적 리더십은 향후 북미관계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나름대로 어려운 결단에 따른 북측의 비핵화 조치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협의해 나갈지가 차후 판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마냥 북한의 일방적 양보만을 바라며 선(先)핵포기나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닌, 북한의 정치·군사적 우려와 불신을 해소해주면서 동시행동에 따른 협상 기조를 유지한다면 고비마다 김 위원장의 결단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은 이달 초 방북한 남측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 비핵화를 완성한다는 시간표를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행복한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경제성장을 이뤄내야만 한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위해 협상의 고비마다 세 차례의 만남으로 우정과 신뢰를 다진 '중재자' 문재인 대통령에 기대어 비핵화를 향한 걸음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을 통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안보와 경제를 얻겠다는 결단을 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런 결단을 이루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믿고 가겠다는 뜻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풀영상] 문 대통령 대집단체조 관람 인사말…"우리 민족 함께 살아야"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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