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서식환경·관리 구체적 기준 없어…정부 점검도 미흡"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직원의 부주의로 사육장을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사건을 계기로 허술한 동물원 관리 실태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5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이 제정돼 작년 5월 30일부터 시행 중이다. 전시동물의 복지 문제, 안전관리 부실로 인한 사고 등 다양한 문제가 잇따르면서 동물원 관리를 규율하는 법률의 제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 규정에 사육환경과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동물원법 시행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동물보호단체들은 지적한다.
현재 동물원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다.
동물원법에 따르면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운영하려는 자는 시설의 소재지, 전문인력 현황, 보유 개체 수와 보유 멸종위기종 개체 수 등을 시·도지사에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보유생물의 질병 관리계획, 적정한 서식환경 제공계획, 안전관리계획, 휴·폐원 시의 보유생물 관리계획 등도 등록사항에 포함되어 있지만, 등록 이후 계획 이행 여부나 관리 상태를 점검하는 제도는 없다.
안전관리 의무와 서식환경에 대한 규정도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안전관리 의무와 관련, '보유생물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여야 한다'고만 할 뿐,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나 질병 감염방지를 위한 의무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서식환경과 관련해서도 '생물 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 공급, 질병 치료 등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할 뿐, 의무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면적이나 시설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며, 위반 시 처벌하는 규정도 없어 강제성이 배제됐다는 문제점이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가운데 일부 종에 대해서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마리당 사육면적 등 사육시설 설치기준을 두고 있긴 하다. 퓨마의 경우 마리당 사육면적은 넓이 8.4㎡, 높이 2m이며, 한 마리가 추가될 때마다 35%씩 면적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사육면적을 규정한 동물이 90종에 불과하며, 종별로 사육면적 외에는 제공되어야 할 사육환경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 멸종위기종에 포함되는 종이라고 해도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출하기에는 사육면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 특히 최근 늘어난 체험형 동물원 중 대다수가 적정한 서식환경과 관리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전국 체험동물원 2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6월 발간한 '동물체험시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을 사육장 대신 관람객이 있는 공간에 돌아다니거나 사육장 밖으로 꺼내 전시하는 등 관람객과 동물 사이에 경계가 없는 '무경계·근거리' 전시형태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대상 업체 중에는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종의 동물을 전시하기 위해 공중에 설치된 구조물에 동물을 올려놓는 '고립상태'로 전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물들이 관람객의 접촉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지만, 사육장에 은신처가 조성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생태적으로 연관이 없는 여러 종의 동물을 합사해 사육하는 동물원도 많았고, 일본원숭이, 다람쥐원숭이 등 사회적 집단화(socialgrouping)가 필요한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씩 단독으로 사육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 관리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동물원법 서식환경과 관리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웨어는 "유럽연합, 영국, 미국, 호주 등 동물원 관련법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동물원을 운영하려면 법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춰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허가제 또는 면허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정부가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 검사를 통해 기준을 지키면서 운영·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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