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난 여자·왕이 된 여자…만화책 '걸크러시'

입력 2018-09-23 08:03  

수염 난 여자·왕이 된 여자…만화책 '걸크러시'
르몽드지 블로그 인기 웹툰 출간…삶을 개척한 여성들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클레망틴 들레(1865∼1939)는 힘이 아주 센 여자아이였고, 청소년이 됐을 때는 자신에게 남들에겐 없는 뭔가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다른 소녀들에게 없는 수염이었다. "그의 면도 인생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빵집을 하는 조제프에게 반해 결혼해 함께 일하다 류머티즘으로 고통받는 남편을 위해 빵집에서 술집으로 업종을 바꾼다. 그러다 어느 날 장터에서 수염을 기른 여성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자신 역시 면도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순식간에 유명해진 그녀는 수염을 기른 자기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팔기 시작했고, 사진은 인기리에 팔려나간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 금지된 남자 옷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커스단 단장이 찾아와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공연을 제안한다. 이후 유럽을 다니며 공연하고, 남편이 죽은 뒤 노년도 자유롭게 보낸 그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직접 고른 묘비명은 이랬다. "수염 난 여자 여기 잠들다"
이런 이야기는 최근 번역 출간된 만화책 '걸크러시'(전 2권)(출판사 문학동네)에 첫 번째 장으로 소개됐다. 이 책의 부제는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규범에 맞서 자기 삶을 개척해나간 여성 30인의 삶을 들려준다.
요즘 프랑스 젊은 독자층에서 인기가 높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페넬로프 바지외 작품으로, 프랑스 르몽드지 인터넷 블로그에 2016년 10개월간 연재됐다. 연재 당시 조회 수 50만 이상을 기록했고, 출간 이후 5개월 동안 7만5천 부 이상 판매됐다.


스스로 왕이 된 여성 은징가(1583∼1663)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왕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강해 왕의 자질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뒤 오빠가 왕위에 올랐고, 그로부터 심한 견제와 핍박을 받는다.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던 그는 절치부심 끝에 결국 왕위에 오른다.
여러 번 쿠데타가 시도되고 유럽 열강들이 억압했지만, 은징가는 40년 가까이 꿋꿋하게 나라를 지킨다.
작가는 프랑스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와 인터뷰에서 '주로 개인의 일상을 소녀 감성 그림으로 전해오다 다분히 페미니즘적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에 관한 질문에 "여성을 단순히 '소녀다운 여자' 아니면 '면도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양분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단호히 답했다고 한다.
용감한 여성들의 삶이 주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만화로 변한 유머러스한 그림과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혜경·권수연 옮김. 152쪽/172쪽.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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