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성기홍 논설위원 =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북한을 엿본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남북 체제 경쟁에 대한 압박감, 이데올로기 우위를 집착하려는 허장성세는 뒤로 물러나 있었다. 대신 북한의 '초라한' 현실을 인정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실용주의와 개혁 노선이 그의 언행, 의전, 일정에서 묻어났다.
북한 체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 김정은 스타일은 다시 한번 도드라졌다. 수령의 절대적 권위와 무오류성을 중시했던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리더십의 변화를 재확인시켰다. 2000년, 2007년 정상회담 때 보였던 체제 선전적, 이념적 의전도 보이지 않았다. 또 전례 없던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펼치며 모든 방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정상화(正常化)'했다. 노동당 청사 공개, 공식 환영식의 예포 발사, 두 정상의 무개차 카퍼레이드, 정상회담 생중계 등은 국제적 규범에 따라 정상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가 스며있는 것이다.
여러 역사적 장면들을 남긴 이번 평양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문 대통령의 능라도 5·1 경기장 연설이다. 평양 주민 속으로 성큼 들어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기록되게 할 전환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과거엔 우리 대통령이 북한 주민을 접촉할 공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 주민들에 다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장면도 문화적 충격일 테지만 이는 서곡이었다. 우리 대통령이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을 앞에 두고 연설한 것은 오래도록 북한 사회에서 회자할 대사건이다.
"문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수뇌 상봉과 회담을 기념하여 평양 시민 여러분 앞에서 직접 뜻깊은 말씀을 하시게 됨을 알려드리게 됩니다. 오늘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
"북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돼 참으로 반갑습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 위원장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
김 위원장으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문 대통령 연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열두 차례 터져 나오는 가운데 7분 가량 이어졌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미디어는 선전선동의 도구이고, 그 정점에 정치연설이 있다. 북한에서도 지도자의 정치연설은 수령을 정점으로 체제를 결속시키고 통제하는 기제였다. 그런 북한이 선전선동의 무기를 '남조선 괴뢰의 수괴'에게 건넨 것이다. 문 대통령의 육성은 평양 주민들에게 날것으로 전달됐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 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공공외교의 기회를 준 것이다. 서방에서도 동맹국 정상에게조차 자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의회 연설 같은 대중연설의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김 위원장과 나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뒤이어 쏟아진 평양 주민들의 우렁찬 박수와 함성은, 김 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 서명 후 기자회견에서 확약한 비핵화 의지가 북한 인민들의 총의로 재확인되는 서약식처럼 보였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는 발언에도 함성이 메아리쳤다. 남북이 공존ㆍ공영의 파트너임이 5·1경기장에서 공유되는 순간이었다.
남북 정상이 마이크를 주고 받은 '능라도 연설'을 실질적으로 상호 체제를 인정한 남북의 '능라도 선언'이라 부르고 싶다. 1991년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 정신을 담은 최초의 남북 간 문서인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됐지만, 실질적인 이행을 위한 신뢰의 토대는 허약했다. 핵 문제를 비롯한 적대적 사건들이 잇따른 배경이다.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과 북한 주민의 반향은 남북 당국자 간 위로부터의 합의가 아래로부터의 인식 공유로 확산하고 굳건해지는 장이었다.
'능라도 연설'은 두 정상의 두터워진 신뢰는 물론, 김정은의 북한 체제 장악에 대한 자신감, 남한 체제를 주민들 앞에서 인정하는 탈(脫)이념 현실주의에서 비롯됐다. 참모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태극기 부대의 반대 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개의치 않은 채 '서울 답방'을 결단한 것도 그의 실용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2박 3일간 평양과 백두산에서 표출된 김정은 시대의 노선이 비핵화를 거쳐 북한을 '강성국가'로 이끄는 토대가 될런지 주목할 수 밖에 없게 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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