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유호 실종 20년]⑧실낱같은 생존 희망

입력 2018-09-28 11:07  

[텐유호 실종 20년]⑧실낱같은 생존 희망
무인도 납치·인신매매 가능성 거론
소후닷컴 "중국 선원 일기 작성 '10월 모(某)일' 중단"

(서울·자카르타·싱가포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텐유호가 실종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사라진 선원 14명 중 일부가 어디에선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이들도 없지는 않다.
당시 해적들이 배와 화물만 뺏고 선원들을 구명정에 태워 표류시키거나 다른 선박을 통해 미얀마 등 제3국이나 무인도 등지로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해적들은 1990년 중반까지만 해도 선박이나 화물을 빼앗은 뒤 '보안 유지'를 위해 사건을 목격한 선원들을 모두 살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중국 등이 자국 선원을 살해한 해적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신속히 재판에 넘기고 사형을 집행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해적들이 배나 화물을 강탈한 후 선원들을 죽이지 않고 풀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구명정에 태우거나 무인도에 버리는 일 종종 있어
중국 정부는 텐유호 실종 두 달 뒤인 1998년 11월 16일 남중국해 해상에서 발생한 창셩(長勝)호 사건으로 자국 선원 23명이 살해되자 해적 38명을 체포했다.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한 중국 정부는 두 달 후 13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2000년 1월 28일 이를 전격적으로 집행했다. 선원 살해를 저지른 자들에게 관용은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점에서 해적단이 텐유호 선원들을 구명정이나 임시로 만든 조각배에 태워 표류시키거나 무인도에 버리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면, 전원은 아니더라도 일부가 생존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해기사협회가 텐유호 실종 석 달 후인 1998년 12월 31일 신영주 선장과 박하준 기관장의 행방을 속히 찾아달라며 해양경찰청에 제출한 진정서에도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협회는 당시 "최근 국제해사기구(IMO)에서 발표한 선박 탈취 사례를 보면 해상강도들이 선원들을 무인도에 버리거나 특정 지역에 억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예를 들면 1999년 3월 발생한 파나마 선적 마린 마스터(Marine Master)호 사건이 있다. 미얀마 해적 14명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장자강(張家港)을 떠나 인도 콜카타로 가던 이 배를 빼앗은 뒤 선원 21명을 벵골만 남동쪽 안다만해(海)에서 구명정에 태워 표류시켰다. 선원들은 험한 파도 속에서도 열흘을 버틴 끝에 태국 어선에 전원 구조됐다.

◇ 일기장 발견됐나?
텐유호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과 관련해 특히 주목되는 내용이 중국의 소후(搜狐)닷컴이 텐유호 사건 4년 후인 2002년 8월 17일 낸 기사에 실려 있다.
소후닷컴은 중국 공안의 '산에이-1호'(텐유호의 변조된 이름) 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에서 "한 선원의 방에서 일기장 한 권이 발견됐는데 10월 모(某)일을 기점으로 일기장 여백에 선을 그어 날짜를 표시하는 작업이 중단됐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소후닷컴은 이를 근거로 "이 날 해적에게 선박을 납치당한 것이 분명해보인다"라고 분석했으나, 이런 결론에는 무리가 있다. 통신 두절 등 정황으로 보아 텐유호가 납치된 시점은 1998년 9월 27∼29일께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일기장이 발견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텐유호 선원 중 한 사람의 것이 맞다면, 납치 후에도 선원들이 감금된 상태로 한동안 살아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는 있다.

◇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부산과 울산 외에 자카르타와 메단 등 인도네시아 항구도시에서 만난 해운업 종사자들 중에도 텐유호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박은수(72) 전 흥아해운 노조위원장은 "텐유호 해적들도 선원들을 죽이지 않고 미얀마로 끌고 가 사설 선원학원 등에 팔아넘겼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20년 전만 해도 외국 상선을 타면 돈벌이가 좋아서 미얀마 등에 선원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런 학원에서 실무를 가르칠 강사들도 많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해경 수사요원은 "한때 미얀마 등지에서 신 선장이나 박 기관장 가족들에게 연락이 온다는 소문이 나돌아 수사 당국이 최장 9개월까지도 감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달 28일 쿠알라항의 해안경비대와 출입국사무소 관리들을 만난데 이어 29일에는 직접 선원들을 만나 해적 용의자의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면서 탐문을 해보려고 메단 시 소재 벨라완 항구를 찾았다.
통역사와 함께 인도네시아 벨라완 항구 주변에서 그물 작업을 하는 선원들을 상대로 텐유호 해적 사건 탐문을 하면서 텐유호 약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해적 '로저'와 '지미 코'의 이름을 아는 이가 있는지 수소문했다.
이러던 중 한 선원이 "해적들과 친한 사람을 안다"라며 우리 일행을 재봉사 코코(48) 씨에게 데려갔다.
코코 씨는 마약사범 출신으로 수마트라섬의 타중 피낭(Tajing Pinang) 교도소에서 1988년부터 10년간 복역하면서 해적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밝혔다. 그는 "선원들이 싱가포르 남쪽에 있는 인도네시아령 바탐섬 주변의 무인도 중 한 곳에 끌려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코 씨는 "해적들이 선박 강탈 후 무인도에 은신해 있다가 조용해지면 또 '출정'을 한다"면서 "해적 소굴인 무인도에 끌고가 위협이 되지 않도록 선원들을 분산 수용해 놓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코 씨를 소개한 선원도 "말라카해협은 폭이 좁고 유속이 느려 선원을 살해해 수장하면 금방 떠오를 공산이 크다"는 의견을 기자에게 제시했다.
코코씨는 기자가 텐유호에서 이름을 바꾼 비토리아(Vittoria)호에 탔던 선원 13명의 명단을 보여주며 아는 이름이 있는지 물어보자 "이름만 갖고는 모르겠다. 얼굴을 보면 누가 해적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텐유호는 금시초문이지만 비토리아호 얘기는 들어본 것 같다"면서 "그 배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인 중국 선원들이 타고 있었고 싱가포르와도 무슨 연관이 있는 선박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duckhw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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