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금지·간통죄 위헌 결정에 이어 여성 관련 종교 금기 풀어
"이해관계 첨예한 정부·의회 대신 공익 실현"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최근 인도 대법원의 연이은 '진보적' 결정이 현지에서 화제다.
정치권에서조차 제대로 손대지 못하던 구습들을 앞장서서 과감하게 차례로 폐지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은 이날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한 한 유명 힌두사원에 대해 "관련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인도 남부 케랄라 주(州)의 사바리말라 사원의 여성 출입 금지 관습이 성 평등성을 침해한다는 탄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인도의 상당수 힌두사원은 생리 중인 여성의 출입을 막고 있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게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이들 사원은 생리하지 않는 여성은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사바리말라 사원은 힌두 종단에서 워낙 신성시되는 곳이라는 이유 등으로 10세부터 50세까지 모든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해왔다.
디파크 미스라 대법원장은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지만 인도 사회가 워낙 보수적이라 이 같은 관습이 오늘날까지 깨지지 못했던 것이다.
대법원은 최근 이 같은 구습을 타파하는데 연일 성가를 높이고 있다.
전날인 27일에도 간통죄 처벌 조항(형법 497조) 폐지 청원과 관련한 평결에서 "간통은 범죄가 아니다"라며 간통죄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6일에는 동성애 등을 불법으로 규정한 '게이금지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두 법은 모두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표적인 구시대법으로 꼽힌다. 간통죄와 동성애 금지법 조항은 각각 158년, 15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법원은 이 밖에도 최근 인도의 주민등록번호라고 할 수 있는 아다르 제도가 합법이라고 판결한 것을 비롯해 쓰레기 투기, 무슬림 이혼 제도, 야생 호랑이 사살 문제 등 온갖 사안에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7일자 기사에서 "대법원은 방대하면서 동시에 혼란스러운 13억 인구의 인도에서 가장 필수적인 기관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1947년 인도 독립과 함께 출범한 대법원은 연방 정부와 의회가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는 '빈 틈'을 절묘하게 메우며 공익을 실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거대한 영토를 가진 인도는 29개 주와 7개 연방 지구로 나뉘어있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은 연방 정부가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회도 카스트, 종교, 지역 등을 대변하는 이들로 구성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아무리 공익에 부합하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집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역할은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출범하면서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모디 총리는 과거 총리와 달리 국민 일상생활에 깊게 연관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화장실, 청소, 의료지원, 직접세 등에서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 토대가 보수적인 힌두 민족주의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모디 정부가 들어선 뒤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 갈등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의 공익적 판결이 과거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프라샨트 부샨 변호사는 뉴욕타임스에 "대법원은 정부와 연관된 중요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대법원이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 와중에 대법원은 지난 수십 년과 비교할 때 최근 훨씬 큰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법원이 인상적인 판결을 내놓더라도 정부에 의해 제대로 후속조치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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