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증시 4% 급락·스프레드(국채 금리차) 급등
EU·야당 "무책임한 예산안…채무위기 증폭돼 경제불안 부를 것"
伊정부 "재정지출 확대로 성장 촉진해 국가부채 줄일 것"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정부가 유럽연합(EU)과 투자자들의 우려대로 재정지출을 큰 폭으로 늘리는 계획을 담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자 시장이 즉각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28일 오후(현지시간) 한때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는 4.6%까지 급락했다. 특히, 은행주가 직격탄을 맞아 우니크레디트, 인테사 산파올로 등 대형은행들의 주가는 6∼7% 빠졌다. 방카 BPM의 주가는 11% 이상 추락했다.
전날 235.5bp로 마감했던 이탈리아와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차(스프레드)는 한때 280bp를 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탈리아 리스크의 지표로 인식되는 스프레드는 높을수록 투자 심리가 불안함을 의미한다.
이날 금융시장 불안은 지난 6월 서유럽 최초로 포퓰리즘 세력에 넘어간 이탈리아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설정하는 데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날 밤 국내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올해 1.6% 수준이던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내년에는 2.4%로 대폭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길 원하는 것은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제시한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이 손을 잡고 구성한 이탈리아 연정은 빈민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제공, 세금 인하, 연금 수령 연령 재하향 등 막대한 국가재정이 필요한 공약을 등에 업고 지난 총선에서 약진한 바 있다.
예산안 수립을 책임지는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부 장관 등 정부 내 일부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 확대를 앞장서 밀어붙인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겸 부총리는 "투자와 성장을 다시 촉진할 역사적인 예산안이 승리를 거뒀다"며 "이는 정부의 승리가 아니라 시민의 승리"라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이탈리아의 내년 예산안은 EU가 공동으로 정한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처럼 국가 채무 증가를 허용할 경우 경제 여건이 악화하자마자 상황은 즉각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탈리아는 현재 GDP의 약 131%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이는 GDP 대비 채무 규모에 있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에서 그리스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것이라, 이탈리아가 빚을 늘리는 정책을 펼칠 경우 그리스처럼 채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도좌파 민주당이 주도하던 전임 정부의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일했던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의원도 포퓰리즘 정부가 집권 후 짠 첫 예산안에 대해 "국가부채를 늘려 평범한 이탈리아 국민과 회사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방향으로 무책임하게 유턴했다"고 혹평했다.
전임 정부는 정권에서 물러나기 전 막대한 국가부채를 고려해 내년 예산안을 GDP의 0.8%로 설정하려 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예산안 발표 바로 다음 날부터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국내외에서 비난이 폭주하고 있으나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성장을 촉진하고, 이에 따라 채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날 "우리는 국가부채를 상환하길 원하며, 채무가 줄어들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하며 곧 시장 불안이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는 (EU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며 EU, 개별 투자자들과 예산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해 예산안에 대한 오해를 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국회 동의를 거쳐 내달 15일까지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해야 해, 재정지출 확대 계획을 담은 이탈리아 예산안을 둘러싼 양측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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