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본 조선인의 궁금증 '그들은 왜 죽음을 즐기나'

입력 2018-09-30 06:20   수정 2018-11-01 16:04

일본을 본 조선인의 궁금증 '그들은 왜 죽음을 즐기나'
재일교포 3세가 쓴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유재란 때 붙잡혀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강항(1567∼1618)은 일본인의 습성을 '낙사오생'(樂死惡生)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죽음을 즐기고 삶을 싫어한다는 뜻. 강항은 인간이 본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일본인은 특이하게도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봤다.
비단 강항뿐 아니다. 항시 칼을 지참하는 일본 사무라이는 문(文)을 중시한 조선 사대부에게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무라이는 주인을 위해 의(義)를 지키는 일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에도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1603년 수립된 에도(江戶) 막부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는 달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이에 원중거(1719∼1790)는 1763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뒤 "전에 왜인을 논할 때 살인에 과감하고 자살을 가볍게 여긴다고 했는데, 이러한 평가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쌓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사오생이라는 일본인의 가치관이 변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신간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는 김성일(1538∼1593)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590년 일본을 사행하고 집필한 '해사록'부터 원중거가 1763년에 남긴 '화국지'까지 약 170년간 간행된 일본 사행록 35종을 분석해 조선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재일교포 3세인 박상휘 중국 중산대 특빙연구원. 도쿄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희병 교수 지도로 조선통신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은 박사학위 논문에 그간 발표한 논문과 새롭게 쓴 글을 합쳐 펴냈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학계에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특히 2000년대에는 통신사 기록을 통시적 시각으로 검토한 논문이 늘어났다.
저자는 기존 연구와 차별화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보다는 감정에 기반해 사행록을 들여다보고, 정치는 물론 경제·사회·문화까지 다양한 분야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강항과 원생거가 일본인의 생명관을 거론한 예에서 알 수 있듯, 선비들이 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동질성과 이질성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17세기 이후 기술과 문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일본의 실용성에 주목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기술자를 낮게 보지 않는 사회적 태도, 도량형 통일, 검소한 생활을 하는 백성, 무역항 나가사키의 존재는 조선인에게 낯설지만 일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요소였다.
또 임진왜란 직후에는 일본에서 조선 선비와 필담을 할 수 있는 집단이 승려밖에 없었으나,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글을 아는 문인이 급증해 선비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세태(1653∼1725)는 1682년 일본을 돌아보고는 "저들이 우리를 대접할 때 겉으로는 공손하지만 속으로는 깊이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갈 때 우리의 글에 대해 좋고 나쁨과 장단점을 평론하고 책으로 엮어 국중에 유포한다"며 "나 같은 못난이로서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까 정말로 두렵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땀이 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일본의 변화는 일본인을 미개한 민족으로 치부하던 조선인의 고정관념을 바꿨고, 조선인이 일본에 거부감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 원인이 됐다.
저자는 "조선 문인들이 일본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이나 적개심만 가진 것은 아니다"라며 일본이 조선인에게 양가의 감정을 품게 하는 나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맺음말에서 조선 선비와 일본의 교류는 물음, 내성(內省), 소통이라는 관점으로 살필 수 있다면서 "일본 문인들의 다정함은 사절의 심금을 크게 울렸고, 문자를 통한 소통은 감정적 유대의식을 낳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창비. 444쪽. 2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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