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에브 총리, 개표결과 압도적 찬성 업고 "헌법개정 착수"
야당 "투표 무효…총리 사퇴하라"…전문가 "위기증폭될 것"
EU·나토 등 서방, 마케도니아 국호변경 국민투표 결과 환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와의 해묵은 갈등을 끝내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연합(EU) 가입으로 이끌 국호변경 국민투표 이후 마케도니아가 분열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케도니아의 국호를 '북마케도니아'로 바꾸기로 한 그리스와의 합의안을 놓고 지난달 30일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찬성표가 압도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50%가 되지 않는 저조한 투표율에 찬반 양측이 투표 결과를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어서다.
마케도니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개표가 거의 끝난 1일 오전 기준으로 전체의 91.4%는 찬성을 밝혀, 5.7%에 그친 반대표를 압도했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 180만명 가운데 고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6.8%만이 투표에 참가해 투표율이 과반에도 미달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는 전체 유권자의 약 25%가량이 해외로 이주, 선거에서 투표율 과반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조란 자에브 총리는 찬성표가 압도한 것에 방점을 찍고, 이번 선거를 국호 변경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확인한 '승리'로 규정하며 국호 변경을 위한 후속 조치인 헌법 개정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케도니가 국호 변경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의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헌법 개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
당초 자에브 총리는 국민투표에서의 압도적 찬성을 동력 삼아 국호 변경에 미온적인 야당을 압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번 국민투표의 투표율이 기대를 크게 하회한 탓에 헌법 개정 작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호 변경에 대한 헌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려면 전체 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현재 자에브 총리가 이끄는 연립내각은 3분의 2 의석에 12표가량 부족한 상황이다.
야당은 당장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자 국민투표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자에브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민족주의 성향의 야당과 마케도니아 국민 대다수는 그리스와의 합의안이 마케도니아 주권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해 왔다.
자에브 총리는 그러나 야당의 이런 요구를 일축하며, 야당의 반대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현지 정치분석가인 페타르 아르소브스키는 선거 결과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뒤 AP통신에 "찬성표가 압도했으나 투표율이 워낙 낮아 마케도니아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며 "총리가 헌법개정을 관철시키고, (국호 변경을 위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마케도니아는 불확실성에 빠져들었고, 위기가 증폭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등 서방 세계는 찬성 의견이 압도하는 나타나자 일제히 환영을 표명했다.
요하네스 한 유럽연합(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은 "마케도니아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이번 결정을 존중해 최대한의 책임감과 초당적인 협력으로 한 단계 전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마케도니아의 모든 정치인과 정당들이 이번 역사적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 건설적이며, 책임감 있게 노력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이어 "나토의 문은 마케도니아에 아직 열려있다"며 "그러나 먼저 모든 국가적 절차가 완료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투표를 예의주시해 온 미국 국무부 역시 선거 결과를 반기며 "마케도니아 정치인들은 당파를 초월해 (국호 변경을 위한) 후속 절차를 이행함으로써 서방 세계의 완전한 일원으로서의 밝은 미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온 서방은 마케도니아의 나토와 EU 가입을 독려하며, 그 전제 조건인 국호 변경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필두로 서방 주요 인사들은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마케도니아를 잇따라 방문,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을 호소한 바 있다.
한편, 자에브 총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지난 6월 마케도니아의 이름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기로 전격 합의한 바 있다.
1991년 유고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마케도니아는 1993년에 구(舊)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공화국(FYROM)이라는 이름으로 유엔에 가입했으나, 이후 그리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2008년 나토 가입 문턱에서 좌절했고, EU 가입을 위한 절차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이 큰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그를 배출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심지인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시사한다며 반발해 왔다.
27년 동안 나라 이름을 둘러싸고 반목하던 양국은 작년 5월 취임한 개혁 성향의 자에브 총리가 그리스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한 것을 계기로 화해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고,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양국 갈등을 종식하기 위한 합의안을 도출했다.
마케도니아 측에서 국호 변경의 모든 절차가 완료되면 공은 그리스로 넘어간다.
그리스에서도 보수 성향의 야당과 국민이 이웃 나라의 새 이름에 '마케도니아'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한 찬성할 수 없다며 타협안에 저항하고 있어 양국이 27년째 이어오고 있는 국명 분쟁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지는 두 나라 모두에서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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