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오부치 20주년] ① '과거사의 그늘' 못 벗어난 한일관계

입력 2018-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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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오부치 20주년] ① '과거사의 그늘' 못 벗어난 한일관계
선언이후 한일교류 활성화에도 역사문제로 정부관계 심한 부침
전문가들,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서 日 건설적 역할 유도해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이달 8일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선언) 발표 20주년을 앞둔 가운데, 양국 관계의 현실은 고인이 된 두 지도자의 20년 전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과거사를 넘어 미래를 보자고 했지만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 해산 문제와 자위대 함정의 욱일기 게양 문제 등 논란이 된 한일 현안에서 보듯 양국은 여전히 '과거'를 딛고 있다.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계기에 채택된 선언은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원칙을 포함한 11개항으로 구성됐다. 부속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행동계획'은 구체적인 실천 과제 43개를 열거했다.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데 두 정상이 의견 일치를 봤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기에는 오부치 총리가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한 내용이 포함됐다. 김 대통령이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조세영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동아시아연구원(EAI)에 실은 논문을 통해 "한일 외교사상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공식 합의문서로 명확히 했다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다른 의의는 한일협력의 방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라며 "시대는 변했지만 지금도 한일협력의 내용은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제시된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언 발표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드라마 '겨울연가'가 불을 지핀 일본 내 '한류열풍' 등으로 민간 교류는 그 지평을 넓혀 나갔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공동개최한 것도 양국관계에 한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위안부, 야스쿠니(靖國) 등 역사인식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한일관계가 좋아질만 하면 역사문제로 인해 후퇴하고, 수시로 '갈등기'와 '냉각기'를 오가면서 지도자 간 신뢰에 바탕한 지속가능한 협력관계는 좀처럼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총리 재임중 6차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2001∼2006년 총리 재임), 끊임없이 역사 수정주의 논란에 선 아베 신조(安倍晋三·2006∼2007년, 2012∼재임중) 등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 인식과 함께,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 그 안에 똬리 튼 혐한 정서, 한국내 반일 정서 등은 지금의 한일관계를 만든 복합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전임 박근혜 정부 시절 과거사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시도로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나왔지만 피해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정치적 타결로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불신만 키웠다.
그나마 한일관계를 지탱하는 '공통 분모'는 대북 문제다. 올들어 남북간 논의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일본에 서훈 국정원장을 잇달아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고, 일본도 그에 대해 사의를 표한 것이 그 사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에 즈음해 대일 외교에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이 존재하는 만큼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은미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선언 20주년을 맞아 최근 외교원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한국과 일본의 논의를 양자 차원을 넘어 한일중, 한미일 등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소다자, 다자간 논의의 장을 만들고, 실질적 협력을 활성화하는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한 역사 문제에서도 상호 충돌하는 입장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차관은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서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되, 사실상 형해화하는 식의 기조로 나가기보다는 한일간 협의를 통해 그 문제를 협력적 방법으로 풀 수 있다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박홍규 교수는 "'투트랙'의 원래 의미는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기에 위안부 등 역사 문제를 그냥 둘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한일간에 바퀴를 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DJ-오부치 선언은 결코 쉬운 문제만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DJ가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했듯 문 대통령도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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