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지질함·짠내가 감정의 본질이죠"

입력 2018-10-04 00:00  

에피톤 프로젝트 "지질함·짠내가 감정의 본질이죠"
4집 '마음속의 단어들'…"피처링 없이 내 목소리만 채웠죠"
수지가 타이틀곡 '첫사랑' 뮤비 주인공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돌아서는 연인 앞에서 무릎이 푹 꺾여본 적 있는지. 마음이 다치거나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 날이 있는지. 그럴 때 싱어송라이터 에피톤 프로젝트(본명 차세정·34)의 노래는 늘 위안이었다. 너 없이 사는 게 무섭다고 고백하고 나면(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상처는 이내 아물고 예쁜 꽃이 피었다(선인장).
에피톤 프로젝트가 긴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 4년 만의 정규앨범 '마음속의 단어들'을 들고서다. 내밀한 감정의 조각을 꺼내 엮는 솜씨는 여전하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벅차기도 하고, 이거 하려고 이 고생했나 싶기도 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주제가 안 잡히더라고요. 단어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어요. 그러다 '마음속의 단어들'이라는 글자가 현몽(現夢)처럼 떠올랐어요. 일상에 묻혀 퇴색된 감정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에 예민했고 어떤 냄새를 좋아했다는 기억들…. 묻혀있던 단어들이 제 음반을 통해 상기될 수 있다면 삭막한 일상에 해방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2006년 싱글 '1229'로 데뷔한 에피톤 프로젝트는 2009년 발표한 미니앨범 '긴 여행의 시작'부터 1집 '유실물 보관소', 2집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3집 '각자의 밤'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 선우정아, 심규선, 한희정 등 객원 보컬과 합작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앨범은 모두 혼자 불렀다. 석달간 영국 런던과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노랫말을 길어 올렸다고 한다.
"저는 그렇게 좋은 보컬리스트가 아니에요. 한계점이 분명하죠. 그래서 저보다 감정 표현을 잘하고 발음이 좋은 분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분을 기용해 작업해왔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긴 여행에서 제 안에 있는걸 끄집어낸 자서전이에요. 툭툭 던지듯 독백하는 느낌으로 불렀어요.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 겨울밤에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앨범에는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해 '푸르른 날에', '소나기', '어른', '연착', '리프라이스'(Reprise), '이름', '마음을 널다', '그대 내게 어떤 사랑이었나', '나무', '자장가'까지 11곡이 담겼다. 냉소적인 게 쿨한 거라 인증받는 시대에 어색하리만치 내밀한 감정을 담았다.
그는 "'왜 이렇게 지질하고 짠내나느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제 감정의 본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작품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그게 시대를 반하든 앞서가든 중요하진 않다"고 털어놨다.
'첫사랑'은 곡이 너무 안 써져서 정신이 나가기 직전에 써진 곡이라고 했다. 뮤직비디오에는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지난해 1월 수지 솔로앨범 '예스? 노?'의 수록곡 '꽃마리'를 써준 게 인연이 됐다.
"연차가 쌓일수록 기술적인 것에 치중하게 됐어요. 어느 녹음실 마이크가 얼마짜리라더라, 어느 스피커가 좋다더라…. 그런데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이 초창기 제 음악을 좋아한 건 푸릇푸릇한 감정이 신선해서였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결국 승부를 봐야 할 건 멜로디와 가사거든요.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첫사랑'이 써졌어요."
노랫말에 후회가 묻어난다는 물음에는 "제가 원래 후회를 잘 하는 성격"이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파리에서 젊은 남녀가 작은 우산 아래 있는 걸 봤어요. 남자는 한쪽 어깨가 다 젖어 있었죠. 그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싶더라고요. 꼭 이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 삶이 쉽지만은 않고, 사랑하면 꼭 좋은 시절만 있는 게 아니라 외롭기도 하다는 걸 담담하게 쓰고 싶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 쓰고 불렀다는 노래들은 그래서인지 듣기 편안하다.
그는 "예전에는 변박자에 리듬을 엄청 꼬아서 썼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날카로움이 무뎌졌다"며 "오히려 그래서 전체적으로 앨범이 깨끗하고 예쁘게 만들어졌다. 아마도 역대 제 앨범 중 가장 커머셜한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끔 지나친 서정성을 강요당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흥!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아이돌 음악을 만든다"며 "절대 주변에 들려주거나 발표하진 않을 것"이라고 농반진반 덧붙였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가수와 작곡가 가운데 어느 쪽이 정체성에 가깝냐는 질문에 한참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저를 소개할 때 '음악 만드는 일을 한다'고 말하곤 해요. 가수라고 하기엔 '난 그 일 하는 사람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저변에 있거든요. 나훈아, 조용필, 이선희, 김윤아 선배님 같은 분들이 진짜 가수죠. 제가 좀 더 늙으면 길이 보일 것 같아요. 무대 위 플레이어가 될지, 마이클 잭슨을 뒤에서 받쳐줬던 위대한 뮤지션 퀸시 존스처럼 살아갈지요."
에피톤 프로젝트는 이달 안에 앨범과 동명의 에세이집을 낸다. 12월에는 서울에서 콘서트로 오랜만에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신보는 4일 오후 6시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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