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중심언어" 지적 많아…피해자들 표현에 트라우마
'구하라 동영상' 계기 널리 퍼져…"무분별한 사용 삼가야"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이른바 '구하라 동영상'을 계기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라는 말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널리 회자하고 있다.
TV 대담 프로그램에서도 평소에는 사실상 금기시되는 포르노라는 말이 단지 '리벤지'라는 말과 결합했다고 해서 사실상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걸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27) 씨는 지난달 말 전 남자친구인 유명 헤어디자이너 A 씨를 강요·협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구 씨는 쌍방폭행이 일어난 지난달 13일 A 씨가 과거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적인 영상을 전송하면서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고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상에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이 주요 검색어로 떠올랐고, 언론 기사에도 등장하는 등 급속히 퍼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4일 '리벤지 포르노 범들 강력 징역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듯 많은 사람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의 사용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리벤지 포르노는 사귀던 연인과 헤어진 뒤 이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목적으로 두 사람의 은밀한 영상이나 사진을 인터넷 혹은 SNS에 동의 없이 공개하는 행위를 뜻한다.
전문가들은 이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이 가해자 중심의 영어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리벤지라는 말 자체에 피해자가 복수를 당할 만한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뉘앙스가 있어 리벤지 자체를 정당화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표현 자체가 '남성의 언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피해자가 까맣게 모르는 사이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동영상을 유통하거나, 소규모 친구 집단 사이에 공유하는 형태도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복수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이나 흥미를 추구하는 경우여서 리벤지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포르노라는 표현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끼리 촬영한 영상물을 마치 불특정 다수를 위해 작정하고 찍은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성 피해자에게는 "그런 걸 왜 찍었느냐",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등에서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 때문에 주로 피해자인 여성들이 상당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클레어 맥글린 영국 더럼대 법대교수는 좀 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 '영상기반 성적 학대(image-based sexual abuse)'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윤덕경 박사도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가 가해자 중심적이라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왔다"며 "특히 '포르노'라는 단어는 상업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성적 흥분을 느끼기 위한 도구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에 사용할 용어로는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벤지 포르노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며 "일각에서는 '이미지 성착취', '기술 매개 젠더 폭력' 등 새로운 용어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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