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은 불가역적 핵폐기에 핵심 요소…"판 차 또 파는 것 아냐"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의 모든 비핵화 조치에는 반드시 검증이 따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첫 비핵화 조치라고 할 수 있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에 외부 사찰단을 뒤늦게 수용한 것은 향후 비핵화 조치마다 국제사회의 검증을 수반한다는 원칙에 사실상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지난 5월 이미 폭파한 곳'이라고 지적하자 "기자들을 초청한 것과 사찰단을 초청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며 "둘러보라고 사찰단을 들여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조치이자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외교소식통들은 나워트 대변인이 언급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조치'에 주목하며 북한의 핵실험장 사찰 수용의 의미를 "같은 차를 또 파는 것"이 아닌 "이미 판 차이지만 살지 말지에 대한 검수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전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처를 할 때마다 미국 등 전문집단의 사찰과 검증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관례와 원칙을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 이외에 북한이 실질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는 지난 5월 핵실험장 폐쇄뿐이지만, 기자들만 초청돼 검증 과정이 없었다.
두 번째 조치가 될 가능성이 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사찰은 남북 정상의 3차 회담 결과물인 '9월 평양공동선언'에 "동창리 발동기 시험장과 로켓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고 못박았다.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되지 않은 핵실험장 사찰은 뒤늦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 면담에서 비로소 성사됐다.
이는 앞으로 세 번째 비핵화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즉 평양공동선언에서 밝힌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의 사찰 검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사찰과 검증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에서 가장 중요하고 미국이 원하는 '불가역성'을 확보하는 핵심과정이다.
북한은 북미 간에 신뢰가 쌓이지 않은 만큼 자신들의 핵 보유 수준을 철저히 감추면서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얻는 만큼 내놓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찰과 검증에 거부감이 컸다.
사찰과 검증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은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한 약속마저 뒤집은 데서 잘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1차 회담 때 핵실험장 폐쇄와 관련,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으나 폭파 현장에는 전문가들을 제외했다.
두 정상의 약속이 아무리 비공개였다고 할지라도 성사되지 못한 데는 핵실험장 폐쇄 현장을 지켜본 전문가들에 의해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노출되기 쉽다는 점, 특히 이에 대한 실무자들의 반대가 컸던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관측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사찰과 충분한 검증이 북한 비핵화의 핵심 조치라며 '불가역적 폐기' 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지속해서 드러냈다.
결국, 북한이 평양공동선언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을 통해 미국이 요구하던 사찰과 검증 요구를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과 함께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은 앞으로 비핵화 모든 조치에 사찰과 검증이 뒤따른다는 의미이자 그 출발점이고, 그동안 미국과 전 세계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바란 FFVD를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특히 "핵실험장 사찰 검증은 북한의 핵종류와 핵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변핵단지와 평양 산음동 미사일 공장에 대한 사찰 검증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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