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는 일단 방어…비지상파 "활용 없이 한류도 없다"
국감 기점으로 연말까지는 통일된 입장 정리될 듯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거대 공룡'으로 불리는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를 방어할 것인지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국내 방송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일단 지상파들은 한국방송협회를 통해 "지상파 방송은 유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계와의 협력으로 상생해왔다"며 넷플릭스에 신작 콘텐츠를 팔지 않고 견제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350억원 규모로 넷플릭스에 판매한 스튜디오드래곤을 비롯해 비지상파와 관련 제작사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세계적인 플랫폼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한류 사업도 불가능하지 않겠냐며 우려를 표한다.
◇ "국내 생태계 보호" vs. "1억 5천 가입자 활용해야"
한국방송협회는 국내 방송사, IPTV 사업자들의 넷플릭스와의 제휴에 대해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의 시발점"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특히 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한 시점부터는 "지금까지의 (방어)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극히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상파들은 신작 드라마를 넷플릭스에 팔려다 취소하는 사례가 있는 등 내부적으로는 고민이 깊은 모양새이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협회와 의견을 함께한다.
지상파 한 드라마본부 관계자는 14일 "시청자들이 앞으로 OTT 플랫폼으로 작품을 많이 보게 될 텐데 넷플릭스가 시장을 장악해버리면 우리는 콘텐츠 제공자임에도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콘텐츠 산업 발전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리만의 센 OTT 기업이 나오기 전까지는 방어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비지상파의 신작 판매를 우려한다. 그는 "넷플릭스가 국내 신작에 투자한다고는 하지만 중장기 계획에 따라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것"이라며 "구작을 파는 것은 몰라도 신작 판매는 지양해야 한다. 비지상파들의 신작 판매에 대한 변화 기류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 비지상파들은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으면서도 콘텐츠, 그리고 미디어 플랫폼 간 국경이 사라지는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국내 시장을 키울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낸다.
tvN 드라마 중에서는 '미스터 션샤인' 뿐만 아니라 '화유기', '슬기로운 감빵생활', '비밀의 숲' 등의 신작이 넷플릭스에 이미 판매된 바 있다. JTBC '맨투맨', '청춘시대' 등 역시 기대 이상의 가격에 판매됐다.
비지상파 방송사 한 관계자는 "한류가 다시 일어나면서 국내 콘텐츠가 선진국에서도 먹히는 가운데 1억 5천만명이라는 유료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를 활용하면 우리 콘텐츠를 더 확산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중국처럼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원천 봉쇄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마케팅 방법의 하나인 넷플릭스 판매를 무조건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국내 OTT 경쟁력 강화하면서 콘텐츠 투자 병행"
원론적으로 국내 OTT 기업을 육성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내 OTT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넷플릭스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등에 올라타 활용할 것인지에서 의견이 갈린다.
넷플릭스를 둘러싼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에 따르면 세계 OTT 시장이 2022년까지 약 6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인 데 반해, 우리나라 OTT 업계의 세계 시장 비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OTT가 약진한다고 섣불리 규제하기보다는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며 "동적이고 경쟁적인 시장인 데다 공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OTT를 기존 방송처럼 사회적 영향력 논리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 역시 "넷플릭스 등을 규제해 국내 시장을 방어하는 전략보다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유도하고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 한국지사가 생기면서 콘텐츠 판매에 대한 협상의 여지도 많이 생겨난 가운데 방송사 간 넷플릭스에 대응하는 온도 차는 더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책을 벗어난 방송 콘텐츠 사업은 불가능한 만큼 이번 국감을 기점으로 연말까지는 국내 방송사들이 어느 정도 통일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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