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 개인전 연 한효석, 나체 조각으로 차별·불균형 지적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0일 한효석 개인전 '불평등의 균형'이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작가 발언을 경청하던 기자들 책상 위로 자꾸만 무엇인가가 어른거렸다. 막대 양 끝에 매달린 두 남자의 나체가 드리운 그림자였다. 건물에 미세한 진동이 있을 때마다 사내들은 조금씩 움직이며 아래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한효석은 2014년 이 전시장에 돼지 사체(로 보이는 입체 작업)를 매달아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전라북도 정읍의 양돈 농장에서 2년간 숙식하며 지낸 작가가 돼지 사체를 본떠 액체 실리콘과 레진 유화물감으로 완성한 형상은 무척 적나라했다. 임신부와 심약자 출입을 제한한 전시였을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작가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대량생산되고 학대받다 죽어가는 가축들의 현실을 이렇게 작품으로 고발했다.
4년 만에 다시 열린 개인전에서 작가는 특유의 극사실주의풍은 유지한 채, 인간과 사회 구조를 향한 비판을 이어간다.
지하 '불평등의 균형(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은 평택 미군기지의 백인과 흑인 병사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가는 백인 미군의 몸에는 흑색을, 흑인 미군에는 백색을 칠함으로써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 문제를 묻는다.
"원래는 피부색을 서로 바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모델로 나선 흑인 미군에게 선물로 두상을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한 뒤, 색을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그 미군이 흰색으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심연에, 마음 깊은 곳에 (피부색 때문에) 긁힌 것이 있었던 것이죠."
막대 양 끝에 여러 사람 머리와 달러 돈다발이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는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는 생명의 존엄이 자본의 지배 권력에 위협받는 현실을 비추고, 자본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묻는다.
'불평등의 균형'(2018)은 나체의 한 남성이 양팔을 벌려 수평으로 뻗은 채 서 있는 조각이다. 영화 '직지코드'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데이비드 레드먼이 모델로 나선 작품이다.
인종차별, 자본지배 등에 민감한 것은 작가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다. 학교 친구 중에는 혼혈이 많았다. 그럼에도 혼혈인을 보는 시선이 더 싸늘했다고 작가는 기억한다.
작가 부모는 미군기지 비행장 인근에서 소와 돼지 등을 키웠다. 소들은 곧잘 유산했고, 결국 농장은 파산했다. 뒤늦게야 소 유산이 전투기 소음이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돼지 작업이나 얼굴 생살을 그대로 벗겨낸 듯한 '고깃덩이' 유화 작업보다 강도는 덜한 듯하지만, '불평등의 균형' 또한 불편하게 여길 사람이 적지 않다.
한효석은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다"라면서 "저 말고도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는 작가가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왜 불편할 수 있는 미술을 고집하는지를 재차 묻자, 작가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이야기를 꺼냈다.
"빅토르 위고는 글로 잘못된 현실에 포문을 열었잖아요. 작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이 바뀌도록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힘없는 보헤미안이 아니라, 이 사회와 이 세상이 좀 더 정상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봅니다."
전시는 11월 18일까지. 문의 ☎ 02-725-1020.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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