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스리랑카인에 의외의 동정여론…"힘없는 개인에 이입"

입력 2018-10-13 07:30  

풍등 스리랑카인에 의외의 동정여론…"힘없는 개인에 이입"

(고양=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 8일, '스리랑카 근로자'라는 키워드가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궜다. 휘발유 수백만 리터가 불탄 고양 저유소 화재를 유발한 피의자로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가 긴급체포됐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 관련 활동가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걱정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공고히 형성돼 있는 이주 노동자, 난민, 다문화 등에 대한 혐오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예상과 달랐다. 풍등 하나에 뚫린 저유소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오히려 "죄 없는 스리랑카인 노동자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지 마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과 각종 누리집 게시물에 더해 '스리랑카인 노동자를 구속하지 말아 달라'는 청와대 청원 게시물까지 올라왔다.
결국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이에 대해서도 "당연한 결과" 또는 "송유관 공사의 과실에 수사를 집중하라"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주 노동자 혐오 정서를 고려하면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체포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이전에 힘없는 개인이라는 측면에 대중들이 이입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호기심에 풍등을 날렸을 뿐인데, 수십억원의 재산 피해가 난 대형 화재의 죄를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이 나도 저런 일을 겪을 수 있는 힘없는 개인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면 힘없는 개인이 죄를 뒤집어쓰고, 정작 책임이 있는 권력자, 가진 자들은 빠져나가 왔다"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쌓인 불만과 분노가 이번에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이번 사건에서 대중들이 받아들인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누구나 날릴 수 있는 풍등으로 발생한 어이없는 화재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 대중들은 개인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성향이 강한데, 누구나 쉽게 날릴 수 있는 풍등을 날렸다가 대형 화재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을 보며 나도 저렇게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을 보고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시선이 좋아졌다고는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개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난민,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난 스리랑카 노동자 A(27)씨는 현재 기숙사에서 머물며 변호사, 활동가들과 함께 앞으로 진행될 경찰 수사에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 오전 10시 56분께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옥외탱크 14기 중 하나인 휘발유 탱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석유 260만 리터가 불타 43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경찰은 화재발생 직전 저유소 인근 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화재를 유발한 혐의로 A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jhch79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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