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 "이탈리아, 약속 안 지키고 있어"…살비니 "그만 모욕하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재정 적자를 대폭 확대한 이탈리아의 내년 예산을 둘러싸고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의 실세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과 유럽연합(EU) 행정부의 수장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또 설전을 주고 받았다.
융커 위원장은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탈리아의 내년 예산안에 대한 불만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이탈리아의 전임 정부는 내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0.8% 이내로 설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 정부는 이를 2.4%로 올리려 한다"며 "이탈리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 극우정당 '동맹'이 손을 잡고 지난 6월 출범한 이탈리아 새 정부는 저소득층에 월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제공, 세금 인하, 연금 수령 연령을 올린 전임 정부의 연금 개혁 백지화 등의 핵심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재정적자 규모를 전임 정부의 계획보다 3배 확대한 내년 예산안을 발표, 국내외의 우려를 사고 있다.
EU와 시장은 GDP의 130%가 넘는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이탈리아가 빚을 더 늘리는 정책을 쓸 경우 그리스식의 채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연일 경고하고 있다.
융커 위원장은 프랑스의 경우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EU의 규정을 수년 동안 지키지 않았으나, EU가 이를 용인해준 점에 비춰 EU가 이탈리아에는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는 "프랑스는 이탈리아보다 국가부채가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약속을 항상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는 이탈리아에 적대감이 없다. 오히려 이탈리아를 사랑한다"며 "그들은 우리를 '시민의 목소리에 무심한, 벙커에 갇혀 있는 차가운 괴물'로 표현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발언은 예산안과 관련해 EU의 압박에 반기를 들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가 최근 융커 위원장 등 EU 집행위원회의 주요 인사들을 원색적으로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융커는 이어 "EU 회원국들은 빈곤과 싸우고,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법인세를 바꿀 자유가 있지만, 유럽의 연대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규정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같은 융커 위원장의 인터뷰에 즉각 반격했다.
그는 "융커는 입을 닫고, 이탈리아인들과 그들이 뽑은 합법적인 정부를 그만 모욕하라"며 "룩셈부르크인인 그는 조세 회피처인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나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오는 15일까지 EU 집행위원회에 내년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회원국의 예산을 감독할 권한이 있는 EU는 이탈리아가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인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는 한 예산안 승인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돼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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