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커피 세계사'…중세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출생률을 떨어뜨렸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커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 중 하나다. 점심시간 휴대용 커피잔을 들고 일터로 돌아가는 직장인 모습은 일상이다.
우리 삶에서 떼놓기 어려운 일부가 된 커피는 세계적으로도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대중적인 음료다. 커피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짧은 시간에 세계인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일본의 '커피 오타쿠' 탄베 유키히로가 펴낸 '커피 세계사(황소자리 펴냄)'는 이런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한다.
15세기 예멘에서 태동한 상업용 커피의 기원에서부터 오스만 제국으로의 전파, 유럽의 커피 하우스 시대, 커피나무의 세계적 확산, 산업적 발전,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커피 문화 부흥에 이르기까지 커피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딱딱하고 단조롭게 역사를 기술하기보다는 곳곳에 흥미로운 일화를 배치해 눈길을 잡아끈다.
예컨대 지금은 '홍차의 나라'로 불리는 영국은 17세기 중반 '1호' 커피하우스가 등장한 이후 30년 만에 수도 런던에만 3천 군데 커피하우스가 영업할 만큼 커피 붐에 휩싸였다. 당시 런던 인구가 50만 명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인기다.
이런 현상은 1649년 청교도 혁명에서 왕당파를 누르고 헤게모니를 잡은 의회파의 약진과 관련 있다. 왕족과 귀족들이 궁전과 살롱에서 사교했듯 영국 사회의 신주류로 등장한 일반 시민들은 교류의 장으로 커피 하우스를 선택했다.
그러나 커피 하우스는 선풍적 인기만큼이나 여성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커피 하우스는 '여성 출입금지'였던데다 남성들이 커피 하우스에 빠져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크게 화가 난 여성들은 "커피는 출생률을 떨어뜨린다"는 전단을 만들어 돌렸다고 전해진다.
시민들의 잦은 교류와 토론이 탐탁지 않던 찰스 2세 국왕은 여성의 불만을 활용해 커피 하우스 폐쇄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열흘 만에 명령을 철회해야 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 커피 문화는 뉴잉글랜드 중심지 보스턴에서 태동했다. 커피가 미국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기도 보스턴이 제공했다. 미국 독립전쟁 불씨가 된 '보스턴 티 파티(보스턴 차 사건)'는 미국인들의 삶에 커피를 뿌리내리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보스턴 티 파티는 영국의 불공평하고 과도한 과세에 반발한 급진파들이 1773년 12월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를 습격해 차(茶)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기간에 커피 소비량이 7배나 늘었다고 한다.
특히 보스턴에서는 홍차 대신 옅은 맛 커피가 보급됐고, 이런 영향에 현재까지도 보스턴은 약배전(light roasting)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불린다.
커피 가격과 수급 안정을 위해 1962년 탄생한 '국제커피협정(ICA)'이 쿠바 혁명을 계기로 추진됐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제2의 쿠바' 탄생을 막으려던 미국은 이 협정을 통해 중남미 커피 생산국들의 정세와 경제를 안정화해 반미 공산 세력의 발호를 예방하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윤선해 옮김. 252쪽. 1만5천 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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