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단계서 완화' 文대통령 발언 배경 주목
"'지금 완화' 요구하는 北·'비핵화까지 유지' 美 사이 중재 시도"
'비핵화진전-제재완화-남북협력' 구도 모색…북미협상이 중대변수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우리 정부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비핵화 단계에서 제재완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구상을 천명해 반향이 주목된다.
이 구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에서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구체화했다.
앞서 이달 12일 문 대통령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기조를 다시 확인한 것이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국-프랑스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제재완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도, 그 단계가 확정되기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후속 비핵화 조치 합의 후 그것을 이행하는 도중에도 제재완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추가했다.
그동안 대북 제재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기존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 비핵화 과정에 맞춘 '단계적 완화'를 추진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이는 대북제재 완화 문제에서 견해차가 큰 북미를 겨냥한 중재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16일 "문 대통령의 대북제재 발언은 강경화 외교장관이 언급한 '핵 신고 시기 유연화' 방안에 이어 제재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또 한 번 중재안을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야 제재를 완화한다는 원칙은 유지하되, 북한의 '단계적 상응조치' 요구를 감안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북한은 지난달 유엔 총회 때 리용호 외무상 연설에서 대북제재 해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이래 여러 채널을 통해 파상적인 공세를 펴왔다.
지난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때에도 북한은 제재 해제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근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중국과 러시아에 보내 북·중·러 3국 외교차관 협의를 벌여 도출한 공동보도문에서도 "3자는 북한이 의의있는 실천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취한 데 대해 주목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제때에 대북제재의 조절 과정을 가동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견해 일치를 보았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완전한 비핵화때까지 제재를 유지한다'는 대외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 등에도 대북제재 철저 고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시 세컨더리 제재(주된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자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한 것도 미 행정부의 대북제재 기류를 방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의 관련 언급은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추진 구상과도 잇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15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진행하기로 합의했으며, 경의선 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10월 하순, 동해선 철도 현지 공동조사는 11월 초 각각 착수하기로 했다.
공동조사와 착공식 등은 북한에 대규모 물자 제공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절차에 이어 본격적인 공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재 문제를 넘어서야 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연내에 북한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그 시점에 제재를 완화함으로써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남북 경협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을 피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비핵화 진전-제재 완화-남북관계 진전으로 가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려는 우리 정부의 구상은 결국 첫 단추라 할 '비핵화 진전' 문제를 논의할 북미 협상 결과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게 외교가의 중평이다.
북·미가 조기에 예정된 실무협상을 거쳐 조기에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을 연결하는 첫 합의를 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절차가 연내에 이뤄지면 우리 정부의 구상이 순탄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북미간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미뤄지고 연내 종전선언이 어렵게 될 경우 대북 제재 완화를 둘러싼 한미 조율이 간단치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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