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초 무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를 법한 타구, 다이빙 캐치
"프로 첫 경기에도, 대표팀에서도 안 떨었는데…오늘은 떨렸어요"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최형우(34·KIA 타이거즈)의 타구가 고척돔 외야 좌중간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KIA 더그아웃과 원정 응원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라고 판단했고, 큰 함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 좌익수 이정후(20)는 포기하지 않았다. 빠른 발로 낙구 지점 근처까지 달려간 이정후는 몸을 던져 공을 건져냈다.
이미 2루를 돌았던 1루주자 나지완은 자신을 태그하는 넥센 내야진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결과는 더블 아웃.
KIA로 향하던 승리의 여신도 이정후의 호수비에 반해 방향을 바꾼 듯했다.
'고졸 2년차' 이정후가 넥센에 준플레이오프(준PO)행 티켓을 선물했다.
하이라이트는 7회초 수비였다.
이정후는 16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5-5로 맞선 7회초 무사 1루, 최형우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냈다.
넥센은 5-4로 앞서가다 7회초 로저 버나디나의 2루타와 나지완의 우전 적시타로 5-5 동점을 허용했다.
최형우의 타구가 좌중간을 갈랐다면,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KIA는 비디오판독을 요청했지만, 판정은 뒤바뀌지 않았다. 이정후는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공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후는 '타고난 수비력'에 타구를 향한 간절함까지 섞어 공을 잡아냈다. 이정후의 호수비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은 덕에 넥센은 7회초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경기 뒤 만난 이정후는 "(중견수) 임병욱 선배가 우중간으로 이동하고, 내가 좌중간을 맡기로 했다. 수비 위치 덕에 타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며 "임병욱 선배도 빠르게 달려오고 있어서 충돌할까 봐 조금 빨리 슬라이딩한 것도 공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떠올렸다.
그는 "혹시 공을 놓쳤어도 '이 정도면 잘 따라왔다.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도 잡으니 더 좋다"고 웃었다.
이 호수비로 이정후도 '스위치'를 올렸다.
이정후는 "프로 첫 경기, 국가대표팀 첫 경기에서도 떨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첫 포스트시즌 경기는 정말 떨리더라. 7회 수비를 한 뒤에야 긴장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호수비로 긴장감을 떨치고 나니, 타석에서도 공이 보였다.
앞선 3타석에서 안타를 치지 못했던 이정후는 7회말 우전 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서건창의 타구가 우중간을 가르자 빠른 발을 활용해 홈까지 내달렸다.
이정후 덕에 역전을 막은 넥센은 이정후의 타격과 발로 다시 앞서나가는 점수를 뽑았다.
이정후는 8회초 대타 유민상의 파울 타구를 펜스 근처에서 잡아내는 또 한 번의 진기명기를 선보이며 팀을 지켰다.
KIA가 실책 4개를 범하며 무너져 이정후의 호수비가 안긴 여운은 더 컸다.
2017년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넥센에 입단했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호타준족' 이종범처럼 그의 아들도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다.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언젠가는 내가 '이정후의 아버지'로 불렸으면 한다"고 바랐다. 아버지의 꿈은 이뤄지고 있다.
이정후는 지난해 타율 0.324(552타수 179안타), 2홈런, 47타점, 111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대학교를 졸업해 아들보다 네 살 늦게 프로리그에 뛰어든 아버지 이종범이 품지 못했던 상이다.
이정후는 2년 차 징크스도 겪지 않았다. 올해 정규시즌 그의 성적은 타율 0.355(459타수 163안타), 6홈런, 57타점, 81득점이다.
프로 입문 2년째에 처음 밟은 가을 무대에서도 이정후는 반짝반짝 빛났다. 아버지 이종범의 그늘을 벗어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러나 이종범 위원에게는 아직 아들이 얻지 못한 우승 반지가 있다. 큰 경기 경험도 아버지가 훨씬 많다.
이정후는 "아버지께서 '포스트시즌을 '심장이 큰 사람이 이긴다. 무조건 자신 있게 하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7회 호수비와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 승리로 이정후의 심장은 더 커졌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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