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女농구…박찬숙·박정은 "이름표부터 달고 다시 뜁니다"

입력 2018-10-17 09:13  

위기의 女농구…박찬숙·박정은 "이름표부터 달고 다시 뜁니다"
WKBL 경기운영본부 맡아 여자농구 전설에서 '해결사'로 변신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최근 박찬숙(59) 전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과 박정은(41) 전 삼성생명 코치를 경기운영본부장과 경기운영부장에 선임했다.
올해 7월 이병완 총재가 취임한 이후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두 사람에게 경기 운영 총괄을 맡긴 첫 번째 인사에 농구계가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여자농구는 최근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의 영광은 간데없이 2012년과 2016년 올림픽에는 출전하지도 못했다.
9월 끝난 세계선수권에서도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를 당하며 맥없이 물러섰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뤄 은메달을 획득, 잠시 팬들의 주목을 받는 듯했지만 경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차피 오래 가기 힘든 인기였다.
박찬숙 본부장, 박정은 부장 등 두 명이 맡게 된 경기운영본부는 기존의 심판위원회와 경기부를 합친 조직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2018-2019시즌부터 심판 관리 및 경기 운영 전반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16일 서울 강서구 WKBL 사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박찬숙 본부장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이고 박정은 부장 역시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세계선수권 4강 신화를 일궈낸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박찬숙 본부장은 "2012년 WKBL 혁신위원장 이후 6년 만에 다시 농구 관련 직책을 맡았다"며 "농구인으로서 다시 농구장에 돌아왔는데 주위에서 환영도 많이 해주시고, 또 내가 잘 해야 후배들이 더 잘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임이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본부장은 "무엇보다 감독이나 심판들 모두 다 같이 가야 한다"며 "물론 감독과 심판들 사이에 시각 차이도 있겠지만 자꾸 싸우는 모습 보이면서 제 얼굴에 침 뱉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심판들과 일대일 미팅을 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팀에서 '저 심판은 왜 들어왔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며 "이렇게 신뢰가 무너져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음먹고 휘슬을 거꾸로 불어 승패를 뒤집는 경우가 있다면 내가 먼저 (그런 심판은) 보따리 싸서 내보내겠다"고 약속하며 "하지만 우리 심판들은 그런 것을 할 줄도 모르고 시즌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서로 인정해야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감독들에게도 그런 점을 당부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은 부장 역시 "아무래도 저희가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벤치와 심판, 연맹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즌 개막이 임박해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점점 리그가 진행될수록 좋아진다는 평을 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연맹에서 맡은 직함과 무관하게 대선배로서 최근 한국 여자농구의 취약한 국제 경쟁력에 대해 안타까움도 털어놨다.
현역 시절 '무적 태평양화학 시대'를 이끌었던 박찬숙 본부장은 "저희 때는 남자, 여자농구가 같은 경기장에서 연달아 열렸는데 오히려 여자농구를 보러 온 관중이 훨씬 많았다"며 "그때 이충희, 김현준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냥 들러리네' 이런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박 본부장은 "그때만 해도 여자농구는 세계선수권 준우승도 하고, 국제 경쟁력이 좋았기 때문"이라며 "지금 여자배구 인기가 왜 있느냐. 김연경이라는 슈퍼스타가 있고 국제 대회 나가서도 상위권에 드니까 그런 것"이라고 비교했다.
박정은 부장 역시 "제가 현역으로 뛸 때만 해도 일본에 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며 "일본은 예비엔트리까지 거의 50명 정도로 대표팀을 구성해서 국제 대회도 다양하게 출전하는 등 준비 단계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은 "그런데 우리는 12명 엔트리를 꾸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저변이 취약하고, 그러다 보니 부상 중인 선수를 무리하게 데려가기도 하는 등 성적이 나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아쉬워했다.
최근까지 SPOTV 해설을 맡아 국제 대회 경기를 중계한 그는 "선수들이라고 나가서 지고 싶겠느냐"고 선수들을 감싸며 "국제 대회 부진으로 부상을 참고 나간 선수도 상처받고, 응원했던 팬들도 상처받고 여자농구를 멀리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 본부장과 박 부장은 최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3대3 농구대회에 등 뒤에 자신의 이름을 써 붙인 유니폼을 입고 현장을 누볐다.
두 사람은 "예전엔 팬들이 저희를 찾아와서 응원해주셨지만 지금은 저희가 이름표 붙이고 팬들한테 찾아가야 한다"며 "사실 3대3 농구 경기가 열린 곳도 농구장이 아니라 쇼핑센터였기 때문에 우리가 가서 '농구 좀 봐달라'고 사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성기를 호령했던 박 본부장과 박 부장은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며 "바뀐 시대에서 여자농구가 다시 경쟁력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email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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