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의문사 소재, 유족 문제제기로 중단…고법 "인격권 침해 단정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고(故) 김훈(당시 25세) 육군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영화 '아버지의 전쟁'에서 망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문제가 된 일부 장면에 대해 법원이 기존 결정을 뒤집고 제작을 허가했다.
법원은 영화에서 창작된 부분이 상업영화 제작에서 인정되는 예술·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40부(배기열 수석부장판사)는 전날 제작사 무비엔진과 임성찬 감독이 영화 일부 장면에 대한 촬영 및 상영금지 가처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항고를 받아들였다.
한석규가 주연을 맡은 '아버지의 전쟁'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지난해 2월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유족의 반대로 2개월 만에 제작은 중단됐다.
김 중위의 부친이자 예비역 중장인 김척(76·육사 21기) 씨는 "유족의 명예훼손과 진상규명 방해를 이유로 이미 영화화를 거부했고, 수정된 시나리오 내용 역시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망원인을 왜곡하고 있다"며 지난해 4월 제작사 측을 상대로 촬영 및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심은 김 중위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47장면에 대한 제작 및 상영금지 결정을 내렸다. 제작사 측이 이를 어길 경우 김씨에게 하루에 5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도 결정했다.
제작사 측은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고법에 항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시나리오에서 사망원인이 밝혀진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김 중위의 명예나 사후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망인이 북한군 등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큼에도 영화는 소대 내부 부조리를 조사하는 부적법한 직무 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것처럼 확정적으로 묘사했다고 주장하지만,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재조사를 하고도 사망경위를 규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김씨가 주장하는 사망원인이 진실한 것이라거나 그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이어 "현재로서는 사망경위에 대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작자들이 극적 요소를 위해 사망경위를 군 내부 부조리와 연관된 것으로 창작·묘사했다 하더라도 오락성·상업성·허구성을 본질로 하는 상업영화의 제작에서 인정되는 예술·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가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경각심을 제고해 앞으로 사망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김씨의 노력에 사회적·제도적 측면에서 도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영화가 김씨를 부당하게 권한을 남용하는 예비역 장군으로 묘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영화 내용에 극적 허구가 포함돼 있음을 밝히고 있는 이상 김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취지에 비춰 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성 등을 고양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돼야 하는 점, 자막에 각색 사실을 명시해 관객들이 인식하게 하거나 홍보 과정에서도 적절한 조처를 해 망인이나 유족의 명예나 인격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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