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가족 퍼주고…사립유치원 '비리 복마전'

입력 2018-10-17 17:01   수정 2018-10-17 17:21

내가 쓰고, 가족 퍼주고…사립유치원 '비리 복마전'
유치원 회계로 자녀 땅 임차, 세금 납부도…비리 백태에 국민적 공분
교육부, 비리 근절책 고심 중…"교육 당국 안이함이 문제 키워" 비판도


(전국종합=연합뉴스)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 사례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은 시·도 교육청별로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 지역별로 잠시 논란이 일었다가 이내 잠잠해지곤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계기로 유치원 비리가 전국 단위로 총망라되면서, '이 정도로 썩어 있었던가'하는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기막힌 비리 수법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시·도 교육청별 감사 결과를 토대로 비리 백태를 소개한다.
또 그동안 교육 당국의 안이한 관리를 질타하는 관련 단체 목소리, 일부 교육청이 뒤늦게나마 내놓은 후속 조처 방안도 정리했다.

◇ 온 가족 먹여 살리는 '유치원 가업' 백태
경기도 A유치원 원장은 원생 체험 활동을 위해 설립자 자녀가 운영하는 숲 체험장 부지와 농장 등을 3년간 임차한다는 명목으로 2016년 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월 950만원가량씩 총 1억3천800여만원을 납부했다.
다른 유치원이 비슷한 체험장 임차료로 적게는 월 34만원, 많게는 월 410만원 정도를 지출하는 것과 비교하면 A유치원 임차료는 과다하게 책정됐다.
이 유치원은 또 개인 시설인 해당 체험장에 화장실과 수업용 비닐하우스 등을 설치한다며 유치원 회계에서 7천500여만원을 가져다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한 유치원 설립자도 2014∼2016년 배우자 소유 토지에 체험 학습장을 지으면서 공사비 2억3천만원을 유치원 예산으로 지급했다. 설립자 명의로 된 외제차 2대를 리스하는 데 9천700여만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충북 청주 B유치원 원장은 2016∼2017년 딸에게 방과 후 보조교사 등 인건비 명목으로 7차례 360만원을 지급했는데,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근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도 없었다.
원장은 2015년부터 고가의 의류, 화장품, 홍삼 제품, 골프용품 등을 개인적으로 구매한 뒤 유치원 회계로 980만원을 집행하고 선물 구매비 등에 쓴 것처럼 지출서류를 꾸몄다.
이 밖에 본인과 배우자 자가용 주정차 위반 과태료, 자동차세, 주유비 등 181만원을 유치원 회계로 처리했다. 휴대전화 요금이나 소액결제 등 389만원을 결제한 뒤, 해당 금액을 유치원 공금에서 본인 계좌로 이체하기도 했다.
특히 원장은 같은 건물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을 유치원 돌봄 교사로 채용해 일하게 했다. 영유아법 시행 규칙상 어린이집 원장은 다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업무를 겸임할 수 없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충북도교육청은 회계질서 문란 등 혐의를 적용해 유치원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울산 C유치원은 설립자에게 예절지도사와 사무업무 수행 명목으로 2014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1억360만원을 부당하게 지급했다. 또 설립자 명의로 된 유치원 건물과 토지에 부과된 재산세와 토지세 등 170여만원을 유치원 돈으로 납부했다.
비교적 액수가 많거나 굵직한 비리를 소개했을 뿐, 유사한 사례는 전국에 무수히 많다.
강원도 강릉 한 유치원 원장은 자신 명의로 교육업체를 설립한 뒤 지난해 계약 체결 없이 교육비 1천500여만원을 받았으며, 업체 폐업 후에도 2천만원이 넘는 돈을 지속해서 받았다.
대구 한 유치원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예산 8천100만원을 콘도 회원권과 자가용 구매, 주유비, 개인 식자재 구매 등에 사용했다.
경북 구미시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유치원은 업무 외 통신료, 자동차세와 과태료, 퇴직적립금 등 3천700여만원을 유치원 회계에서 부당 지출했다가 적발됐다.
부산 기장군 한 유치원 설립자는 유치원을 다른 사람에게 불법 임대하고, 학부모에게서 받은 특성화 교육비와 교재비 등 1천245만원을 채무 변제 등으로 사용했다가 적발돼 경찰에 고발됐다.
세종 한 유치원 원장은 자신의 대학교 등록금 908만원을 유치원 회계에서 납부했고, 업무추진비를 지역 주민 경조사비로 지급했다.


◇ 교육 당국, 비리 근절책 마련 착수…"전수조사 등 강력히 대응해야"
교육 당국은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방안 등을 확정한 뒤, 이르면 다음 주 회계·인사규정 정비 등을 포괄하는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에 대한 1차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시·도 교육감이 교육청 차원에서 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는 곳도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현재 4년마다 하는 사립유치원 감사 주기를 3년으로 조정한다. 또 유치원에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즉각 특별감사를 해 공공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도내 108개 사립유치원 중 5학급 이상 규모 유치원 60개에 대해서는 본청에서 전담 감사관 3명을 편성할 계획이다.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은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대책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련의 후속 대응도 국민적 공분을 가라앉히고, 건전한 업계 질서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 대전지부는 "최근 3년간 대전에서 유치원 82곳이 회계업무 비리나 교무·학사운영 소홀 등으로 적발됐는데도, 1곳을 제외한 81곳은 징계가 아닌 행정처분만 받았다"면서 "교육청이 사립유치원에 솜방망이 처분으로 일관해 유치원들이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사립유치원 회계부정을 감시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회계 흐름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조속히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광주여성회는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할 교비를 유치원 원장들이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실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교육 당국은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했다.
여성회는 "일부 유치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청의 5년 치 '찔끔 감사'에서도 믿을 수 없는 비리행태가 드러났다"면서 "지역 전체 유치원을 조사하고, 비리로 적발된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광주시교육청은 현재 172곳인 지역 사립유치원을 2020년까지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정찬욱 양지웅 한무선 손상원 최은지 류수현 이종민 김준호 박재천 허광무 기자)
어린이집 교사 70% "급식비리 목격"…"식자재 구매비로 술도 사" / 연합뉴스 (Yonhapnews)
hk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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